들꽃 이야기

고독한 들꽃 "수리취"

제주영주 2006. 9. 28. 07:51

 

▲수리취

 

수리취를 처음 본 것은 한라산 정상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정상을 향해 헉헉거리며 오르는데 저 멀리 산 아래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까까머리 산골 소년과 맞닥뜨렸습니다. 처음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꽃이라 부르기에는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외모, 밤송이 같은 까까머리에 하얀 털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동그란 얼굴이 우습기만 했습니다. 수리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한참이나 웃어댔습니다. 까까머리 산골 소년 같은 모습이 신기하여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떡취, 산우방, 개취라고도 하는 수리취는 단옷날 어린잎을 떡에 넣어서 만들었던 수리취절편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수리취절편은 먹어보지도 못했으니 그 맛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수수한 수리취의 얼굴처럼 산 향기가 날 듯합니다.

 

가을 하늘을 살며시 열어 젖히는 여명의 빛을 받고 서 있는 모습은 아름다운 꽃이라기보다는 순박한 산골 소년이 막 세수를 하고 나선 모습처럼 수수하고 신선했습니다. 그때의 그 모습이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까까머리 산골 소년이 이른 새벽부터 나무를 하려 산정상에 오른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수리취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꾸밈이 없는 들꽃, 촌스러운 얼굴이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당당함과 순박함이 묻어나는 수리취에 반했습니다. 화려한 꽃들은 처음 보는 순간은 황홀하지만 차츰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그 황홀했던 모습이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촌스러운 꽃은 시듦에도 그다지 변함없이 시들어갑니다.

수리취는 시드는 것 조차 고독합니다. 겨울날 밤송이 같은 머리에 성에 낀 모습을 본다면 각별하게도 수리취에 대한 애잔함이 묻어 날것입니다.

 

수리취는  산속에  파묻혀 살다 죽은 어느 나무꾼의 영혼처럼 고독해 보입니다. 가끔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스라이 보이는 마을을 동경하고 있는 수리취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까까머리 소년에서 차츰차츰 성인이 되면서 거미줄처럼 엉겨붙은 봉오리 중앙이 넓어지면서  검은 빛깔을 띤 자줏빛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수리취는 늙어서도 산을 떠나지 못한 탓인지 산아래 마을이 그리워 수리취의 외로운 마음을 싣고 훨훨 날려보내는 수리취 씨앗들이 가벼이 겨울바람을 타며 산아래 마을을 향해 날아가지만, 늙어버린 육신의 날개는 산아래 마을까지 날아가지도 못한 채 산중턱에 뿌리를 내리게됩니다.

 

산을 지키다 외롭게 선 채로 굳어버린  수리취의 고독함은 겨울날 산행길에서 만날 볼 수 있습니다. 수리취는 산을 지키는 고독한 들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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