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생명으로 넘쳐나는 숲(영혼의 말간 꽃, 버어먼초)
아가야 손톱만큼이나 쏘옥 돋아났던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 이제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가리고 하늘마저 가려 놓았습니다. 하늘을 가린 나무로 인해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숲이지만 그 숲에 가면 신비로운 생명의 탄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묵묵히 신비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신비의 숲 속에서는 퀴퀴한 낙엽 내음이 풍경 오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어오면 나뭇잎은 하늘을 가렸던 창을 살며시 열어 빛과 바람을 맞이합니다. 빛과 바람은 살며시 숲 속으로 들어와 꿈속에 잠겨있던 이파리마다 꽃잎마다 살짝 건드리며 고운 꿈을 펼치게 합니다.
간밤에 내린 비로 촉촉이 대지를 적셔 내리고 바람이 불어오고 빛이 들어와 기다림으로 사랑으로 신비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며 울창한 숲을 만들어갑니다. 울창한 숲 그늘에서 자라는 영혼이 말간 꽃이 있습니다. 낙엽의 영양분을 먹고 탄생되는 꽃, 버어먼초가 나지막하게 피어났습니다.
버어먼초와 눈 맞춤을 하기 위해서는 퀴퀴한 내음이 풍겨오는 숲의 대지에 엎드려야 합니다. 퀴퀴한 내음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내음입니다. 낙엽과 나무들이 대지로 돌아가면서 신비로운 생명을 부활시킵니다.
퀴퀴한 내음에서 자라는 부생식물중에서 수정난풀이나, 버어먼초는 눈처럼 투명하기만 합니다. 그 무엇도 감추지 않는 꽃, 속내를 훤히 내보여주는 꽃, 버어먼초는 영혼이 말간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비의 꽃, 눈처럼 하얀 버어먼초는 가느다란 꽃대를 세우고 한 개에서 다섯 개의 꽃을 피워냅니다. 차츰차츰 버어먼초 안이 노란 빛깔로 충만해질 즈음이면 세 개의 꽃잎이 옅은 노란 입술을 열어 놓습니다.
영혼이 말간 사람은 그 안에서 흐르는 향기와 그 안에서 자라는 생각 그 안에서 머물고 있는 마음 까지 훤히 보이듯이 버어먼초도 영혼이 말간 사람처럼 속을 훤히 보여줍니다. 구도자처럼 말간 영혼을 지녔기에 속이 훤히 보이는가 봅니다.
영혼이 말간 승려가 산길을 오르다 지팡이를 꽂아 놓았더니 눈처럼 하얀 버어먼초로 탄생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버어먼초를 석장(승려가 짚는 지팡이)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영혼이 맑은 꽃, 버어먼초에 걸맞은 이름입니다.
올챙이와 개구리가 전혀 다르듯이 애기버어먼초(애기석장)도 버어먼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줄기에 여러 개의 꽃을 피워냅니다.
애기버어먼초는 버어먼초에 비해 욕심이 많은 가봅니다. 아홉 개의 꽃을 피워내고 있으니 조금은 힘겹게 느껴집니다. 애기버어먼초도 버어먼초처럼 속이 말갛습니다. 투명한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자라는 노란 꿈들이 보입니다. 말간 속이 차오르면 병아리 같은 입술로 음지에서 숲을 향해 대지의 꽃으로 고요한 가운데 숲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버어먼초처럼 영혼이 말갛게 흘러갔으면 합니다. 버어먼초는 제주도의 숲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영혼의 말간 꽃입니다.
▲ 애기버어먼초(애기석장)는 버어먼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애기버어먼초도 버어먼초처럼 속이 말갛습니다.
2005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