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꽃, 구상난풀을 찾아서 ...
붉은구상난풀
구상난풀 이름으로 보아서는 구상나무숲 그늘에서나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구상나무수림대에서 처음 발견되어 구상난풀이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구상난풀을 만나기 위해서는 해발 14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숲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던 중에 희귀하게도 붉은수정난풀이 발견 되었다며 한창 떠들썩했습니다.
붉은수정난풀이라면 틀림없이 미기록종이겠지요. 봄에 피는 수정난풀은 이미 누렇게 열매를 맺히고 있는데 어찌하여 수정난풀이 이제야 피었을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긴, 수정난풀은 한해에 두 번 이른 봄과 늦은 여름에 꽃이 핍니다. 수정난풀은 수정처럼 투명하기 때문에 수정난풀입니다.그런데 붉은수정난풀을 발견했다는 것이 신비롭기만 했습니다. 신비한 붉은수정난풀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주 찾는 숲 속에서 헤매기 시작했지요. 그 숲은 참으로 신비로운 숲입니다. 희귀한 식물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숲입니다. 모기떼가 한창인 숲 속을 누벼보기도 했지만, 그게 쉽게 찾을 수가 없었지요. 마음은 급해 오기만 했지요. 왜냐하면, 꽃은 오랫동안 피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짧은 생을 살다가는 꽃을 시기에 맞춰 볼 수 있어야 제대로 어여쁘게 담아낼 수 있지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꽃잎은 금세 시들어지기 때문이지요. 꽃을 향한 마음은 온통 보고 싶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기만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사랑하는 임을 향한 마음이겠지요. 븕은수정난풀을 향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가던 어느 날 붉은수정난풀이라 생각했던 것이 붉은구상난풀이라고 밝혀지면서 나에게도 붉은구상난풀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임을 만나러 가는 날처럼 아, 설렘으로 온통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붉은구상난풀은 이미 설악산에 발견되었지만. 제주에서는 이게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상난풀은 부생식물로 산지의 숲 속에서 자라며 엽록소가 없고 엷은 황갈색을 띱니다. 비닐모양의 잎이 어긋나며 잔털이 나 있습니다. 수정난풀은 줄기 하나에 한 개의 꽃을 피우지만 구상난풀은 줄기 하나에 여러 개의 꽃을 피웁니다. 고요한 숲 속에서 저녁 노을빛처럼 붉게 타오르는 꽃대를 세우고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꽃, 그 이름은 신비로운 붉은구상난풀입니다. 바람이 살며시 불어오면서 나뭇잎을 걷어올리며 빛이 살며시 내려옵니다. 오랫동안 숲 그늘에 내려와 놀다 가면 좋으련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햇살은 금세 달아나버립니다. 아, 붙잡을 수도 없는 햇살이여, 야속한 햇살이여, 다시 햇살이 숲 그늘로 내려오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모기떼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모기에게 헌혈을 하면서도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줌의 햇살이라도 꽃잎 위로 살며시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햇살은 예고 없이 살며시 숲 그늘로 내려와 달궈진 몸을 살짝 식히고 가기 때문에 햇살이 내려오기를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오로지 기다림과 인내만이 완벽한 미를 창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과 인내에도 완벽한 미를 담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 조금은 속상합니다. 아, 아직은 완성미를 창조할 수 없나 봅니다. 완성미를 멋들어지게 담아낼 수 있는 날이 꼭 오리라 생각합니다. 어여쁜 꽃잎이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비상을 할 듯한, 신비로운 들꽃을 담아내야겠습니다.
2005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