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기 긴 세월 10년 끝에 단아한 자태로 피어나다.
울창한 숲길을 걸어가노라면 마음 안으로 스며드는 초록빛호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초록빛 호수에는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며 아름다움으로 펼쳐집니다. 당신의 호수 안에도 아름다운 싹을 키워보실래요. 자! 그러면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보세요.
푸르름으로 가득 찬 오솔길을 걸어갑니다. 숲으로 난 오솔길은 오로지 정상을 위해서 가는 길만은 아닙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상념의 길로 안내하는 오솔길입니다. 숲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아름다운 꿈길처럼 가볍게 걸어갑니다.
숲 안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힘겨웠던 일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며 행복으로 가득하기만 합니다. 숲에서 나오는 향, 피톤치드로 인해 심신이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이파리로 영혼을 어루만져 내리며 키워내는 숲, 숲은 언제나 아름다운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울창한 숲으로 나래를 펴는 빗살무늬 햇살에 화사하게 웃어줄 아름다운 들꽃을 만나러 떠납니다. 울창한 숲에는 빛이 잠시 들어올 뿐입니다. 그 잠시 들어오는 한 올의 빛을 걸치고
화사하게 웃는 아름다운 들꽃이 있습니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가진 자그마한 난초입니다.
사철란 중에서도 붉은사철란이 제일 먼저 꽃을 피웠습니다. 붉은사철란 잎은 녹색바탕에 흰 줄무늬가 나있으며 잎에 비해 꽃이 큰 편입니다. 꽃대와 씨방에는 털이 나 있으며, 약간의 붉은빛이 도는 꽃잎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울창한 숲으로 들어오는 빛이 투영의 시간은 짧기 때문에 화사하게 꽃을 밝혀 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빗살무늬 햇살이 나래를 펴며 꽃잎 위로 사뿐히 내려앉기를 조용히 기다리며 꽃의 주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기다림으로 피워내는 아름다운 들꽃과의 만남은 자신과의 소중한 만남이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은 키에 한아름 머리에 이고 피어나는 붉은사철란이 한창일 때 털사철란은 고운 꿈을 안고 꽃봉오리를 막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그마한 꽃잎이 조심스레 숲을 밝히는 털사철란 잎은 검은 녹색을 띤 자주색이며 잎 중앙으로 담홍색 또는 흰 줄이 나있으며 줄기는 자갈색입니다. 그래서 자주사철란이라고도 하나 봅니다. 꽃봉오리일 때는 불그스레하지만, 자그마한 꽃잎이 조심스레 입을 열게 되면 붉은빛을 띤 흰색입니다.
붉은사철란과 털사철란이 숲을 향해 노래를 하고 있을 때 사철란은 아직 꿈결에 있습니다.
사철란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짙은 녹색바탕에 흰 무늬가 나 있습니다. 그래서 알록난초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꽃줄기와 씨방에는 솜털 같은 하얀 털이 나 있습니다. 옅은 홍자색을 띤 하얀 꽃이 핍니다.
가장 늦게 피는 사철란은 섬사철란입니다. 여름이 끄트머리에서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섬사철란은 무늬가 없는 싱그러운 초록 잎이며 전체에 털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섬사철란은 제주도와 울릉도에서만 자랍니다. 섬사철란이 기본종은 담홍자색이지만, 눈처럼 하얗게 피는 흰섬사철란도 있습니다. 탐스러운 얼굴, 섬사철란이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다가왔습니다.
아, 단아한 모습으로 대지의 꽃으로 숲을 밝혀냅니다. 오늘을 위해 길고 긴 10년을 기다려온 사철란의 生에 있어서는 오늘이 가장 화려한 날입니다.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날입니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꽃이 지고 나면 다시 10년 후에나 만남을 기약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지금이 소중합니다.
섬사철란
붉게 타오르는 여명의 빛을 받으며 피어나는 섬사철란이여,
오늘, 너와의 만남은 아름다운 세월 속에 묻혀가겠지,
칠흑 같은 검은머리에는 눈처럼 쌓여가고
너와의 만남을 아로새긴 추억은
이마와 입가에 시냇물처럼 새겨지리라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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