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숲의 향기 속으로

제주영주 2006. 3. 9. 10:31

 

 

숲의 향기 속으로


 푸르름이 무성한 성판악을 지나서 숲 터널 가기 전에 보면 좌측으로 트인 오솔길이 있습니다. 초록의 오솔길을 한참 내려가다 보면 허름한 집이 보입니다.

 숲 속엔 초기를 재배하는 나무들이 어깨를 기대고 이슬을 마시며 초기를 잉태하기 위해 고요한 숲 속 그늘에서 몇 달을 지내야 하는 나무들의 침묵만 흐르는 고요한 숲, 노루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산까마귀들이 찾아드는 인적 드문 숲, 숲 사이로 비스듬히 스며드는 햇살이 나뭇잎 위로 잔잔히 뿌려져 내리는 은빛 햇살의 반짝임이 산바람에 팔랑거립니다.

 고요한 숲엔 찾는 이가 없어 좋습니다. 호랑나비 흰나비들이 찾아드는 숲, 야생화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숲길을 걷다 보면 굵직한 삼나무 숲길이 길게 이어져 있는 숲 사이로 뭉게구름을 몰고 오는 여름 하늘이 언뜻언뜻 여유로운 시간 속에 한낮의 여름은 숲 사이로 사라져 갑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먼-훗날

그 누군가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굳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내가 만난 풀꽃이라도 좋습니다

오늘 내가 밟고 지나간 오솔길이라도 좋습니다

오늘 내가 앉았던 냇가의 넓은 바위라도 좋습니다


누군가 보잘 것 없는

풀꽃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풀꽃은 더욱더 아름답게 꽃을 피우며

향기는 천지를 감동케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먼-훗날

이곳을 뇌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기억해 준다면

또는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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