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태풍매미가 휩쓸고 간 오름

제주영주 2006. 3. 9. 10:34

 

 

 

 

태풍매미가 휩쓸고 간 오름

검은오름 (물찻오름)


 물찻오름으로 가는 길은 다른 오름으로 가는 길에 비해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어 차를 타고 가기엔 조금 무리인 것 같습니다. 태풍의 흔적이 고스란히 여기저기 남겨 있는 숲길에 안전하게 차를 세워놓고 상큼한 아침공기를 마셔가면서 숲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태풍(매미)으로 인해 숲마저 고통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숲길, 상처 입은 나뭇잎들은 가을아침 공기에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

 산길은 찬 공기로 가득 차 옷깃을 여미게 하고 산에는 가을도 빨리 찾아옵니다.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고 서 있는 숲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물찻오름 푯말이 눈에 들어왔고 오름으로 가는 길목에는 나무에 빨간 리본을 달아 놓고 있어 제대로 찾아올라 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뿌리 채 뽑힌 나무들이 누워 있고 어느새 훌훌 털어버린 빈 가지 나무들, 산딸나무열매들이 젖은 땅위에 빨간 입술을 묻히고 있습니다. 비목이란 이름표를 달고 서 있는 나무 앞에 서서 '비목' 가곡을 연상케 합니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

깊은 계곡 양지 녘······./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가곡 ‘비목’의 뜻과는 전혀 다른 나무 ‘비목’이지만,  여고서절에 많이 불렀던 비목을 연상케 합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산중에···, 외로운 비목의 쌉싸래한 향을 내며 우리들을 반겨줍니다. 앞서간 이들의 군데군데 작은 돌탑들을 쌓여 흔적을 남겨 놓은 등성이를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섰습니다. 굼부리 안에 호수가 있고 그야말로 산속에 호수입니다. 설익은 으름들이 올망졸망하게 호숫가 쪽에 놓여 있습니다. 앞서간 이들이 놓였나 봅니다. 으름덩굴들이 호숫가 주변에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간간이 비춰주는 햇살에 몸을 녹이고 있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호수 안에는 제법 물이 많이 고여 있습니다. 덩굴로 얽혀가는 나무들이 밀집해 있는 호수주변을 어렵사리 한 바퀴 돌아 하산했습니다. 오는 길에 발밑에 쓰러져 있는 고운 빛깔의 담쟁이 낙엽 두 장을 줍고 왔습니다.

 청단풍잎들이 숭숭 구멍 난 채 완연한 가을바람에 눕히고 있는 가을, 가을입니다.




여물어가는 가을소리에

서걱거리는 풀 섶의 눈물,


은빛 날개 비벼대며

울려 퍼지는 하모니소리

갈바람에 메아리쳐오면


하얀 손을 흔들며

다가올 것만 같은

햇살 고운 얼굴,


낮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에 펄럭이며

써내려가는 가을엽서들이

갈바람에 안부를 묻는다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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