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산굼부리

제주영주 2006. 3. 9. 10:37

 

 

가을을 마시려 가자


은빛 언어들이

하얗게 부서지는

늦은 가을날


휘파람소리

들리지 않는가,


어서 오라고

어서 오라고


곱디고운 하얀 손짓 보이지 않는가,


울긋불긋 단풍드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가을을 마시러 가자


외로운 마음

고독한 마음

고운 단풍잎에 적시며

가을을 마시러 가자



산굼부리


 하늘마저 축복을 하는 것일까요.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이런 날은 반짝이는 햇살에 간지럼 타며 웃음 짓는 구절초향기 맡으며 가을향기에 취해보고 싶은 날입니다. 바바리를 걸치고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떠나보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가을 물감으로 물들이고 있는데 목적지가 필요 있겠습니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색색 단풍이 물들기 시작 한 5.16도로, 더러는 빈 가지인 채로 서 있는 나무들의 묵상 속에 가을의 쓸쓸함이 갈바람을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삼백육십오일 푸르른 삼나무 숲길은 언제나 싱그러운 초록빛깔로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숲길, 심신이 지친 그릇에 가득 담아야 할 초록빛깔입니다. 늘 싱그럽게 출렁일 수 있도록 가득 담아내고 싶습니다. 역시 교통부 장관이 아름다운 도로로 지정할만한 도로입니다.

아름다운 삼나무 숲길을 지나 산굼부리로 도착했습니다. 억새 들녘하면 산굼부리가 최고일 듯싶습니다. 하얀 물결이 일렁이는 산굼부리, 가을향기에 취해 찾아 온 신혼부부들 팀에 끼어 억새  꽃길을 거닐었습니다.

 물결치는 억새꽃길, 파란 하늘가로 두둥실 흘러가는 솜사탕 같은 구름마저 멈춰 섭니다.

굼부리 안에는 식물의 보물 창고라 할 수 있을 만큼 각종 식물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갔을 때는 빠알가니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렸는데 올해에는 태풍 매미로 인해 한 개의 감도 보이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은빛을 자랑하며 갈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아름다운 억새들녘도 태풍으로 인해 허무하게 짓밟힌 채 헝클어진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듬해 오늘을 추억하기 위해 빠알가니 물든 잎, 가을 하늘을 닮은 꽃잎을 따고 왔습니다.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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