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단풍드는 오름

제주영주 2006. 3. 9. 10:39

 

 

단풍드는 오름,

어승생악



 맑고 고운 하늘이 펼쳐지는 가을입니다. 이처럼 고운 하늘만 쳐다보아도 가슴 설렙니다. 

첫 사랑을 만나려 가는 날처럼 가슴 설레는 아침입니다.

 절정에 이른 가을, 남김없이 활활 태워버릴 듯이 사랑을 속삭이며 붉게 물들어 버릴 것만 같은 가을입니다.

 그게 언제였던가···, 이십 년 전 가을날 초지를 조사하려 산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빽빽한 숲에는 지난해의 낙엽들이 고스란히 숨죽인 채 포근한 이불이 되어 나무뿌리들을 포근히 감싸 주고 있는 그 숲에는 가을이 무르익어 뜨겁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활활 타오르는 가을의 품속을 느껴 보았습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붉게 타오르는 숲에서 황홀하리만큼 가을 품속으로 젖어들었던 추억의 가을을 생각하며 이번 산행도 그 해의 가을날 산행처럼 아름다운 가을 산이었으면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갔습니다.

 그때의 마력 같은 숲은 아니었지만, 산행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나무계단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숨 가쁜 소리에 이름표를 단 나무들이 가을 물감을 솔솔 풀어놓으며 우리들의 가슴속에도 고운 빛 가을 물감으로 물들어 놓습니다.

 어느새 나뭇가지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정상에 올라보니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어리목 광장 주차장에는 차들의 빼곡히 줄을 서고 울긋불긋 단풍드는 한라산 허리 자락 줄기마다 이어 놓은 오름들이 옹기종기 모여 봉긋 솟아오른 오름들은 은은한 제주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주시내가 한눈에 훤히 보이고 서쪽으론 애월읍, 동쪽으로 조천까지 보이며 옹기종기 모인 오름들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그림 같은 제주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멀리 있는 오름들이 메아리쳐 올 것만 같은 푸르른 가을 아침입니다. 가지고 간 음료수들을 꺼내 놓고 옹기종기 모여 커피 타임을 가졌습니다. 다음 산행에 대해 의논도 하고 언젠가는 우리도 백두산 천지를 향해 가자고 꿈을 가져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간절한 꿈은 꼭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빼곡히 자란 나무들이 무성해서 산상 주의를 한 바퀴 도는 것은 위험을 따를 듯하여 처음으로 포기를 하고 나무계단 위로 한 잎 두 잎 쌓여가는 낙엽을 밟으며 낙엽이 주는 허무함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희망을 품으며 나무들 사이로 틈틈이 고운 햇살이 반짝이며 가을 숲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으며 하산을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발목을 붙잡는 억새꽃들의 물결을 외면할 수가 없어 잠시나마 무성한 억새꽃길을 걸어보는 가을날입니다.


단풍드는 오름



붉게 물들어가는

너의 뜨거운 가슴에

손을 대면


내 가슴에도

활활 불을 지피우는

가을 숲이 된다


뜨겁게 타오르는

언어들이 목마르게 외치다

스치고 지나가는

갈바람에

퍽퍽 쓰러져 울 것만 같은 가을 숲,



너의 메마른 입술마다

붉은 사랑이 애타게 젖어들며

가을을 노래하고 간다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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