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존자암

제주영주 2006. 3. 9. 10:49

 

 

숲마다 안개꽃이 피어오른다.

존자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우리네 인간사처럼 자욱한 안개 숲 터널을 지나 굽이굽이 돌아 찾아가는 길, 숨죽이며 엄숙하게 땅속 깊숙이 스며드는 젖은 낙엽을 밟으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108걸음으로 조용히 오르는 오솔길은 산사로 향하는 걸음입니다.

 헐벗은 숲 사이로 사락사락 눈발이라도 날렸으면 덜 외로울 듯합니다. 외로운 숲길엔 발끝을 적시는 조릿대 이파리 소리와 자갈 소리만이 겨울바람을 타고 뒤척이며 돌아눕습니다. 헐벗은 숲에는 이슬열매들로 가득 찼습니다. 젖은 나뭇가지마다 알알이 여무는 투명한 열매는 영혼을 씻겨 내리는 열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누구든 이슬열매를 들여다보면 마음을 닦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투명한 열매 속으로 들여다보면 그 열매 안에는 숲이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보입니다.

 이끼 낀 돌 틈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위에는 젖은 낙엽이 쓸쓸히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조용히 숨죽이며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40대를 젖은 낙엽에 비유하듯이 우리는 그렇게 묵묵히 숨죽이며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론가···, 가파른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암자가 보입니다. 운문에 갇힌 볼레오름이  존자암을  지키고 있습니다. 산까마귀 날아들고 발길이 뜸한 산사에는 적막하기만 합니다.

 -존자는 덕이 높고 큰스님으로 ‘아라한’을 말합니다.

부처의 제자 중에는 16아라한, 500아라한, 1200아라한이 있습니다.

존자암은 덕이 높은 큰스님이 암자를 짓고 거주하였다고 하여 '존자암'이라 부릅니다. -

 이곳에 오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숙연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웅전 앞에 졸졸 흐르는 약수 한 모금으로 마음은 이미 샘물처럼 맑아 질 수 있습니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하고 나와 돌계단 하나하나 올라가면 볼레오름 산기슭 바로 밑에 석가세존 사리탑이 보입니다.

장구형으로 생긴 사리탑을 사람들은 '돌종'이라 부릅니다.

 -이곳은 한국불교의 최초의 사리탑 적멸보궁입니다.

한국불교 역사와 탐라국 문화가 숨 쉬는 도량이오니 경건하게 참배하시고 절대로 올라가지 마십시오. -라는 글귀 앞에서 숙연해 집니다.

 쓸쓸한 산사를 뒤로하고 굽이굽이 비탈길을 돌아내려 오는 오솔길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손에 꼭 쥐고 커피 한 모금에 이 생각 저 생각 접하는 현실의 삶 속으로 내려왔습니다.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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