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겨울 오름을 찾아서

제주영주 2006. 3. 9. 10:54

 

겨울 오름을 찾아서

 

온통 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흑백만이 존재하듯 수묵화를 그려내는 오름 풍경이 이채롭다. 이렇게 눈이 쌓이는 날이면 오름의 풍경은 더욱 선명하고 뚜렷하다. 겨울의 흑과 백의 진미(眞美)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오름에서 펼쳐지는 오름 풍광은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하다.

모구리오름은 표선면 성읍리 영주산에서 북서 방향으로 약 2.3km 지점에 있다. 완만한 산등성이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남쪽으로 크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이 오름 내부에는 작은 알오름이 있는 이중구조 화산체다.

모구리오름은 한자표기로 '모구악(母拘岳)'이라 불린다. 이 오름에는 모구리야영장이 있어 오름 주변이 잘 정돈되어있다. 정원 같은 느낌이 들만큼이나 아담하다. 산책길에는 한여름에 그토록 푸르렀던 잔디밭이 누렇게 변해있다. 잿빛 겨울 하늘을 이고 묵묵히 차디찬 입맞춤이 시작됐다. 모구악에서 보이는 오름은 저마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뽐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주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하얗게 눈 덮인 한라산이 영주산을 품고 있는 모습, 여름에 올랐던 다랑쉬오름이랑, 갯내음 넘실거리는 지미봉, 우도, 일출봉, 푸른 바다를 이끌고 눈에 들어와 앉는다. 산상에 올라서니 세찬 바람이 몰아친다. 동사면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삼나무, 소나무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릴 때마다 밟는 촉감이 부드럽다. 솔잎들이 쌓여가는 숲길을 한참이나 오래도록 걸어보고 싶다. 그 옛날의 향수가 짙게 풍겨오는 산길이다. 한 줄기 빛이 내려와 얼어붙은 숲과의 입맞춤으로 후드득후드득 물방울이 떨어진다.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녹아 뜨거운 눈물로 떨어진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사랑처럼,

 

오름

 

세찬 바람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

 

누가 손짓하지 않아도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오름들은 저마다 휘파람 불며

서로 끌어안고

모질게 뒹굴고 있다

 

오름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삼백육십오일

잠들지 않는 바람,

 

바다를 끌고 와

오름 안으로 던져 놓고 가는

모진 바람,

 

오름에 부딪히며

다시 살아나는 바람,

 

모진 바람이 있어

오름들은 

강하게 부드럽게

알몸으로 눕는다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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