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안에 내가 있네!

첫눈 오는 날 이중섭을 만나다

제주영주 2006. 3. 9. 10:51
 

첫눈 오는 날 이중섭을 만나다.


 서리 낀 창가에 고운 첫눈이 날개를 달고 부딪치며 낮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에 깨소금 같은 첫눈이 내립니다. 가슴 설레는 아침, 오늘은 또 무엇을 할까···, 아까운 이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오전은 훌쩍 유유히 낮게 내려앉은 하늘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어느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갈 뿐입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  가만히 있을 수 가없어 스스로  추억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5.16 도로에는 겨울바람 부딪치는 소리가 윙윙거립니다. 헐벗은 숲으로 날아와 앉는 눈, 사락사락 눈이 내립니다. 날개를 돋친 작은 새들의 춤사위일까? 작은 꽃잎의 춤사윌일까? 맑고 고운 눈발이 휘날립니다.  성판악 쪽에는 제법 눈이 많이 묻어 눈길을 밟는 등산객들이 간간이 보입니다. 숲 터널을 지나서 내려가니 햇살이 비치며 포근한 서귀포가 한눈에 보입니다. 역시 서귀포는 따뜻한 남쪽입니다. 제주시에는 첫눈이 내리지만 서귀포는 포근한 햇살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03년 첫눈이 내리는 날 이중섭을 만나다. 이 얼마나 설레는 날인가요. 정방동에 자리 잡은 '이중섭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피난시절 제주도 서귀포에서 1년간 머물다 간 이중섭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자그마한 초가에 세 들어 살았던 방안에는 그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1.3평이 되는 곳에 그의 가족 4명이 좁은 공간에 가난하지만, 살을 비비며 단란하게 살았던 방안 벽에는 그가 지은 시 (소의말)가 한지에 적혀 붙여있습니다.


소의말…대향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그가 거주했던 방 안 문을 열면 섶섬이 제일 먼저 방안으로 들어와 푸른 바다가 출렁이며 앉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보듯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입니다.

작은 물항아리가 부엌입구에 서있고 작은 솥 두 개가 화덕에 얹혀 있습니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 삶의 흔적인 초가를 나와 좁다란 돌담길로 들어가면 돌담 안에는 아담스럽게 꾸며진 작은 텃밭이 정갈스럽게 꾸며져 있으며 그가 거주했던 곳을 복원한 '이중섭박물관'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물고기, 게, 아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가 게를 많이 잡아먹고 살아서 게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게를 많이 등장시켰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에서 보듯이 가난한 화가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은지화에 담은 수채화는 물고기와 아이들, 게와 가족입니다. '도원'에서 보듯이 무릉도원 같은 서귀포에서의 가난했던 삶이지만 그래도 그때가 이중섭 화가에게는 행복했던 시절인 듯싶습니다.

 그의 화필은 '흰 소' '황소'에서 잘 나타나듯이 굵직굵직한 곧은 선이 시원스레 잘 표현 되어 있습니다. 붉은 노을을 등지고 우는 황소의 울음소리가 전시실에 가득 울려 펴지고 있습니다. 41세로 짧은 생을 살다간 화가 이중섭 혼이 슬프게 울고 있습니다.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서귀포 칠십리가 포근한 햇살에 바닷바람이 휘감기며 날아듭니다.


2003년 12월 첫눈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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