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정물오름

제주영주 2006. 3. 9. 12:49

 

 

'들꽃'의 갈채속에 가을 하늘이 가슴에 와 닿네! 

정물·당·도너리오름에 오르면 쪽빛 가을 하늘은 징검다리


 가을은 오름 오르기에 알맞은 시기인 듯싶습니다. 은빛 물결의 출렁임 속에 서늘해지는 바람을 타고 오름을 오릅니다. 어디를 가든 은빛 물결이 출렁거립니다. 흐드러지게 핀 억새 물결 속으로 오름을 오르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봉우리마다 야호~· 야호~· 메아리가 들려옵니다.

 정물오름은 이시돌 목장 곁에 성이시돌 젊음의 집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름입니다.

정물오름으로 가는 입구에는 정물오름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며 표지석 곁에 쌍둥이 샘이 있습니다. 정물샘은 수량이 풍부하여 이웃 마을에서까지 길어다 먹었다고 전해옵니다.

나그네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도 내보지만, 젊음이 집 수녀님들이 정물샘을 잘 가꾸어 앞으로 오고 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에 즐거움을 선사해주리라 믿습니다.

 샘 주변에는 여뀌들이 한창 무리지어 화사한 꽃밭을 꾸미고 있습니다. 쪽빛 물 한 바가지 길어 올릴 때마다 지상은 온통 은빛축제로 들떠 출렁출렁 거립니다. 제주는 온통 은빛 물결 속에 농익어가는 가을의 수고로움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꽃무리가 오름마다 나지막이 피어나 꽃 축제를 엽니다. 콩알보다 자그마한 꽃송이들이 송이송이 달라붙어 층층이 피어나는 여뀌는 흔히 볼 수 있는 풀꽃입니다. 하나의 여뀌가 피었을 때는 볼품없지만 무리지어 핀 여뀌들은 환한 꽃밭을 이룹니다. 사람도 사람과 함께 어울릴 때가 가장 아름다우듯이 꽃들도 무리지어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여뀌꽃 환영 속에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하늘 속으로 종을 치듯이 땡! 땡! 거리는 섬잔대가 한창입니다. 거기에 뒤질세라 층층잔대도 끼어 자그마한 종소리를 냅니다. 오름마다 청아한 종소리에 오름의 풀 섶은 꿈틀거리며 깨어나고 일제히 오름들은 기지개를 켜며 봉긋 솟아올라 하늘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가을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한라부추들이 보랏빛 폭죽을 터트리며 환호성을 치면 가시엉겅퀴들이 뜨거운 갈채를 보내옵니다. 하늘 높이 퍼져나가는 불꽃놀이에 흥이 겨워 신바람난 금불초들이 황금알을 낳습니다. 덩달아 흥에 겨워 큰뱀무꽃이 노란 꽃송이를 들고 따라나서면 미역취들고 함께 일어서 들꽃놀이에 나섭니다. 이에 뒤질세라 꽃향유들이 보랏빛 총채를 들고 오름 들녘마다 흔들리는 계절은 가을축제로 무르익어갑니다. 이렇게 오름에는 들꽃들이 한창입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들국화입니다. 쑥부쟁이꽃이 조용히 피어나 가을바람 속으로 가을노래를 부르면 가을은 아름다운 고독을 토해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는 꽃무리, 서로 다투는 일이 없습니다. 모두가 한여름 뙤약볕을 잘 이겨냈다고 서로에게 갈채를 보내주며 환하게 웃음 지는 꽃무리 앞에서 우리도 들꽃처럼 서로에게 갈채를 보내주는 착한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정물오름은 북쪽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가진 오름이며 전 사면이 풀밭으로 되어 있으나 듬성듬성 나무들도 꽃들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정물 오름은 개가 가리켜 준 옥녀금차형( 옥 같은 여자가 비단을 짜는 형 ) 명당 터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기슭에는 묘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름 남쪽으로 이웃해 있는 당오름과 서쪽으로 도너리오름이 둥근 보름달을 받쳐들고 다가옵니다.

 오름 정상에 서면 푸른 하늘에 맞닿을 듯한 쪽빛 하늘이 가슴으로 내려와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 속으로 하늘 징검다리를 건너 이 오름 저 오름으로 달려갑니다.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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