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따라비

제주영주 2006. 3. 9. 12:45

 

 

제주의 가을…따라비, 은빛 유혹 너울너울

은빛 꿈 너울대는 억새 물결 "어느덧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들녘마다 고운 빛깔로 물들이는 억새꽃이 피어났습니다. 따라비 오름으로 가는 길목에는 온통 억새꽃으로 은은한 가을의 연주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길목에 핀 물봉선 무리가 땡! 땡! 종을 치면 싱그러운 종소리에 들녘은 가을 창을 열어 억새 물결 사이로 오름을 그려 놓습니다. 계절이 그려 놓는 오름, 살랑살랑 나부끼며 손짓하는 억새꽃 물결 사이로 출렁거리는 따라비오름을 그리고 싶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흔들림 없이 그 자리 그곳에서 가을이면 실루엣을 걸치고 가을볕에 눕는 따라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 어느 오름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빛깔로 걸어 올 때마다 현기증이 일만큼이나 출렁거립니다. 그리곤 가슴속 깊이 새겨 놓습니다. 언젠가는 너를 꼭 그릴 거야 그런 다짐을 하면서 그때도 그랬습니다.

따라비오름을 처음 찾아갔을 때 억새꽃 물결이 출렁거리는 가을이 오면 꼭 찾아가서 아름다운 따라비를 그려야겠다고 그렇게 자신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여름 볕처럼 달구어진 가슴에는 타는 듯한 목마름이 넘쳐납니다. 미치도록 그리고 싶다는 그 애타는 가슴을 너는 알고 있을까. 뜨거워지는 가슴을 꾹 눌러 놓고 억새 춤결 따라 걸어 들어갔습니다. 현기증이 일만큼이나 출렁거리는 억새 물결 속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곱게 누운 따라비, 아! 정녕 가을의 오름입니다.

따라비오름은 전 사면이 풀밭으로 되어 있어, 각종 야생화들이 고운 햇살 속으로 웃음 지으며 한 뼘씩 한 뼘씩 꽃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도라지모싯대, 산박하, 산비장이, 쑥부쟁이, 등골나물, 잔대, 참취, 나비나물, 등 이 모두가 나지막이 피어, 오름 전사면에 꽃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름 전체가 목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말들이 봉우리마다 굼부리 마다 한가로이 누비고 있습니다. 송이로 탑을 쌓여 놓은 걸작품이 자연 속에 펼쳐집니다. 오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남겨 놓은 흔적일 것입니다.

따라비오름은 굼부리가 세 개로 되어 있으며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연이어져 있습니다. 보는 각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몇 그루의 소나무가 모진 바람에 자라지 못한 채로 오름에 서서 파도소리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나는 그 작은 소나무 밑에 앉아서 비릿한 바다에서 그리움에 지친 물고기 한 마리의 비늘이 펄떡이는 몸짓을 보았습니다. 그리곤 다시 파도소리가 쏴악~ 쏴악~ 들려오면서 어느새 그리움에 지친 물고기는 사라져갑니다.

 바다는 간데없고 흐릿한 하늘에 성을 이루는 봉우리들이 마치, 다른 세계를 열어 놓은 듯합니다. 보일락말락 봉우리들이 다가왔습니다. 이내 멀어지면서 다른 세계의 궁전 속으로 갇혀버린 느낌이 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내가 사는 나라에서 이탈을 하여 어느 별나라에라도 와 있는 느낌입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오로지 나만 있는 세상입니다. 그 나만의 세상 속에서 궁전 같은 봉우리 속에 갇혀 가을바람에 눕습니다.

가을바람에 쪽빛 하늘을 담아 땡그랑 땡그랑 종을 치면 나지막한 자세로 엎드려 오름마다 피우는 꽃들이 겸손한 얼굴로 오름 살결 속으로 비벼대며 속입니다. 그 속삭임에 황홀한 전율이 흐르고 어느덧 나도 오름의 한 부분이 되어 엎드립니다.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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