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꿈

난과 식물 중에서 가장 자그마한 꽃, 혹난초

제주영주 2007. 6. 21. 00:41

 

 

 

 

내일부터 장마가 온다 하니 그 사이에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라산을 오를까? 아니면 혹난초가 꽃을 피웠는지 확인하려 가볼까 이런저런 궁리 끝에 우선 물 한 병과 도시락을 챙겨서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찾아가는 산길, 조금은 외롭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좋습니다.

깊은 산 속을 가는 데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만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서움을 각오하고 계곡을 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겁이 많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터 강심장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도 아닌데 겨우 꽃을 만나러 가는 일인데 무서움을 각오하고 가야하는지 자신에게 되물어보았습니다.  올해 보지 못하면 내년에 보면 되는데 고집스럽게도 꼭 만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니 몸은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꽃이 피어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헉헉거리면서 올랐습니다.

숨이 찼지만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꽃이 지지 않고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하도 작아 꽃의 어떻게 생겼는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꽃처럼 흐릿하게 보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디카를 꺼내 아무리 담았지만, 제대로 담을 수가 없어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혹난초가 피기를 또 얼마나 기다렸는지 꽃봉오리  상태를 확인하고 하산했던 일, 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꽃에 열중하다 보니 깊은 산 속에 혼자 있다는 생각마저 잊었습니다.

 

혹난초는 상록수나 바위에 자라는 소형의 상록성 착생종으로 잎은 육질이며 두껍고 긴 타원형입니다.

잎 밑에 타원형이 혹처럼 생겨서 혹난초, 또는 보리 알을 닮았다 하여 보리난초라 부릅니다.

종명으로 inconspicuum은 라틴어의 '현저하지 않다.'라는 뜻으로 꽃이 작아 잘 보이 않는다는 뜻이라 합니다.

 

난과 식물 중에서 꽃이 가장 작습니다. 이보다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 난초는 없을 것입니다.

꽃의 모양은 눈으로 봐도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눈곱만큼이나 작습니다.

꽃은 황백색으로 피며 꽃이 작기 때문에 꽃이 피어도 잎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가까이서 담아도 뚜렷하게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혼자 깊은 산 속에서 혹난초 꽃과 씨름을 하다

꽃을 본 것만으로 만족하며 깊은 숲 속을 벗어났습니다.

 

깊은 숲 속을 벗어나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데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직감하고는 친숙했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나 봅니다.

천진스러운 눈빛, 바로 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일 테지요.

 

서로 같은 길을 가는 사람끼리 부담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

말없이 있어도 서로  통하는 일, 즐거운 만남이란 바로 이런 것 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