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여명처럼 가을 숲을 살며시 밝히는 "섬사찰란"
꽃봉오리를 살며시 열어 놓고 있겠지? 생각을하며 숲으로 갔으나 섬사철란은 기다림을 배우라며 꽃잎을 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섬사철란을 만나러 갔으나 퇴짜를 맞았습니다.
섬사철란이 피기까지를 조용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 기다림에는 섬사철란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씩 쌓여갔습니다. 토라진 친구가 환하게 웃어 줄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리듯 기다림을 배우게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는 그 무엇인가를 수없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가끔은 성급하게 기다림을 잊고 살아 갈 때도 많습니다. 성급한 마음을 조금은 늦추라며 섬사철란이 기다림을 배우라 합니다.
언제쯤 필까 망설이듯 섬사철란 꽃봉오리는 입을 다문 채 여름의 끝자락을 보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서성거리며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속에는 섬사철란을 향한 그리움으로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다하여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섬사철란이 소슬바람에 함초롬하게 피기 시작했습니다. 꽃은 목숨을 다하여 아름다움을 토해냅니다. 그 아름다움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보고 지나칩니다. 혼 힘을 다하여 핀다는 것을 잊고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눈으로만 담았기 때문에 눈 한번 깜박이고 나면 금세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습성에 그들이 온 힘을 다하여 핀다는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사철란속 중에서 가장 늦게 피는 섬사철란은 애기사철란, 사철란, 붉은사철란, 털사철란들이 지고 나니 그때야 다문 꽃잎을 살며시 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고 있다가 말문이 터지기라도 한 듯 자그마한 입술을 벌리고는 종알거리며 온갖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철란속 중에서 막내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산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어여쁜 사철란 꽃이 지고 나니 귀여운 이파리들이 숲 속 나무 밑으로 자그마한 파란 손을 뻗어가고 있습니다.
파란 손안에는 ‘싱그러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싱그러움이 담긴 파란 손을 송두리째 뽑혀 초록의 향내를 벗어난 틀 안에서 팔려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일장에서 팔려나가고 있는 사철란들이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요?
사철란 뿐만 아닙니다. 복수초가 피기 시작하면 오일장 꽃집으로 나들이 나왔는지 세복수초, 노루귀, 새우란까지 오일장 꽃집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을 벗삼아 자그마한 뿌리를 내린 삶들을 송두리째 뽑히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에서는 그림자도 찾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조직 배양을 하여 증식시켜야만 종을 지킬 수 있으며 또한, 자연 그대로 보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철란은 꽃도 아름답지만 한겨울에도 돋보이는 싱그러운 잎을 가진 난초과 식물입니다.
섬사철란 중에서는 담홍색을 띠는 섬사철란과 하얀 눈꽃송이처럼 순백으로 피는 "흰섬사철란"이 있습니다. 담홍색을 띠는 것이 기본종이지만 순백으로 피는 ‘흰 섬사철’란이 제법 눈에 많이 띄기도 합니다.
담홍색을 띠는 섬사철란은 수줍음이 많은지 홍조 띤 얼굴로 어둠을 밝히는 여명처럼 가을 숲을 살며시 밝혀줍니다. 섬사철란이 수줍게 피고 나면 가을은 깊어 갑니다.
▲하얀 눈꽃송이처럼 순백으로 피는 섬사철란은 '흰 섬사철란'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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