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서천꽃밭에 핀 고결한 꽃,

제주영주 2007. 9. 12. 21:20

 

△ 매화를 닮은 물매화

 

매화를 닮은 꽃,

 

천상의 꽃밭이라 불리는 곳에 물매화. 애기물매화가 순백의 꽃으로 화들짝 피었습니다.

천상의 꽃밭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이며 선계에 들어선 듯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곳입니다.

 

아주 머언 옛날 제주에는 저승계도 이승계도 아닌  저 멀리 아주 먼 곳에  죽어야 건너갈 수 있는 강이 있었습니다.

 

오금까지 오는 물을 지나 잔등까지 물이 차고 목까지 차오르는 큰 강을 건너면  아름다운 서천꽃밭이 있습니다.

 

서천꽃밭에는 광천못이 있는데 광천못 물을 떠다가 서천꽃밭에  주는 것은 죽은 아이들의 몫입니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주는 물을 먹고 피어나는 서천꽃밭에는 희귀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납니다.

 

웃음꽃, 싸움꽃, 멸망꽃, 수레멜망악심꽃, 뼈 오를 꽃, 살 오를 꽃, 피 오를 꽃, 오장육부 기를 꽃, 환생꽃, 생불꽃, 오색꽃  만발하게 피어나는 서천꽃밭에 자그마한 키에 앙증맞은 애기물매화가 피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백의 꽃잎을 활짝 펼치며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가을하늘을 이고 피어나는 애기물매화는 원앙부인이 흔들어 깨웠는지도 모릅니다. 몇 주 전에 꽃망울을 웅크리고 있던 애기물매화가 화들짝 피어 물가에 서 있습니다.

 

순백의 꽃, 애기물매화는 고결한 영혼꽃입니다. 한 생을 위해 오로지 한 송이 꽃을 피워냅니다.

꽃을 향한 한 개의 잎은 줄기를 감싸며 바람이 흔들고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 생을 위한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믿음으로  눈처럼 맑은 순백의  한 송이 꽃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애기물매화는 사군자의 기품을 지닌 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고결함이 느껴집니다.

 

 

물가나 습한 곳에서 매화를 닮은 꽃을 피우기 때문에 '물매화'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물매화는 범의귀과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제주에서는 물매화와  애기물매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산에부터 하나 둘씩 피기 시작하여 가을이 깊어 갈 무렵이면 저지대의 민틋한 오름에도 피어납니다.

 

물매화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헛수술이 진짜 수술보다 아름답습니다.

헛수술은 진주로 장식한 왕관처럼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물매화 헛수술은  5개로 끝이 12-22개로 갈라지는 반면에 애기물매화는 끝이 3-8개로 갈라집니다.

또한, 잎도 조금 다릅니다. 물매화 잎은 긴 둥근 심장형인 반면에 애기물매화는 심장형 또는 원형입니다.

크기도 조금 차이가 난다 하지만 고산에 피우는 꽃들은 대부분 작기 때문에 크기로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작년 가을날 물매화와  애기물매화를 구분하기 위해 한참이나 눈여겨보았습니다.

꽃이 작기 때문에 꽃잎 안에 이슬방울처럼 영롱한 헛수술을  세는 것은 육안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돋보기를 사용해서 관찰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설 속의  서천꽃밭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라는 꽃밭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광천못이 있는데, 광천못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은 아이들 같은 맑고 깨끗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처럼 맑고 깨끗한 광천못 물을  마신다면  우리의 오장육부도 깨끗하게 맑아지고 웃음꽃으로 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