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추억의 바닷가... '썩은다리'

제주영주 2007. 12. 2. 20:43

 

 

▲썩은다리 (오름의 지세와 형상으로 보아 ‘사근(沙根)달(높은 봉우리의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썩은다리 가봔?"

"썩은섬은 알아도 썩은다리는 모르쿠다. "어디 있쑤광?"

"화순해수욕장에 있는 오름이라"

게민 가보게 마심"

 

이름도 특이한 썩은다리. 이름만 들어도 신비롭다. 그곳에 가면 특별한 무엇이 있을 듯하다. 안덕면 화순 사거리에서 사계리 쪽 방향으로 500m 지점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아담한 화순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썩은다리는 일명 석근동산, 사근이동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썩은다리의 남쪽 기슭으로는 신비로운 응회암 화산체가 눈앞에 펼쳐진다. 수성화산체로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침식되어 일부만 남은 화산이다. 사근이동산과 화순해수욕장을 두고 마주한 곳에는 검은 현무암으로 형성된 절벽이 있다. 이곳은 현무암 용암이 바다와 만나 급격히 식으면서 급냉현무암으로 형성된 절벽이다.

향긋한 감국 꽃향기 따라 썩은다리를 오른다. 썩은다리는 표고 42m, 비고37m에 야트막한 오름이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오름이지만, 남쪽 기슭으로는 거센 파도의 울림 탓일까? 황갈색 퇴적암층으로 형성된 벼랑의 신비로움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오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퇴적암이 오랜 시간 풍화되어 노란색으로 변한 것이, 마치 돌이 썩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풍파가 크게 일 때 동산 정상까지 모래를 쌓아 올리면, 풍년이 들고 정상의 모래를 씻어 가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오름 정상 남동쪽 끄트머리에 거욱대가 있다. 마을의 경계나 허한 곳에 돌무더기 원통형으로 쌓아 올린 탑 모양을 방사탑이라고 한다. 방사탑 위에 동자석이나 돌하르방 같은 석상 또는 새 모양의 자연 석상을 세운 것을 거욱대라 한다. 방사탑은 부정과 악을 막고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풍수지리와 관련된 제주민속이다. 이곳 거욱대의 형상은 돌하르방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다. 동동네와 섯동네 기 싸움으로 세워진 거욱대라는 설도 있다.

급격히 발달한 문명 탓일까? 전설은 사라져가고 그해 여름의 추억도 시나브로 사라져 가겠지. 겨울 바닷가는 을씨년스럽게 바람이 심하게 분다, 검은 모래 위로 남겨진 발자국은 지워졌지만, 그해 여름의 추억을 찾아 더듬어본다.

신비로운 퇴적암층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었던 곳. 26년 전 추억이 남겨진 자리에는 샛노란 감국꽃이 마파람에 살랑이며 반긴다. 썩은다리의 남쪽 벼랑의 아름다움에 반했던 그해의 여름은 즐거웠다. 단 하루였지만 여행이란 첫발을 내디뎠던 화순해수욕장은 잊을 수 없는 해변이다. 다시 거닐고 싶었던 추억의 바닷가, 신비한 퇴적암층으로 형성된 썩은다리가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닐까. 함께했던 친구들은 없지만, 쓸쓸한 바닷가로 그때의 추억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모래성을 쌓으며 깔깔거렸던 웃음소리, 조개껍데기를 줍던 친구들, 신비로움에 다가섰던 황갈색 퇴적암층에 감탄을 자아냈던 지난날들. 산방산, 용머리가 보이고 형제섬이 보이는 드넓은 바닷가에서 마냥 좋아라했던 추억. 젊음이 눈부시게 빛나던 그해의 여름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모두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가 되어버린 중년으로 그해 여름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스친다. 다정했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쓸쓸한 바닷가를 거닐어 본다. 친구야, 너희는 가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지. 향긋한 감국 꽃향기처럼 순수했던 청춘은 어디로 갔을까. “보고 싶다.”

 

 

 

▲ 추억의 바닷가.-화순해수욕장

 

 

 

 

▲오름 남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거욱대.
 

 

 

 △  친구는 떠나고 없는데....퇴적암층에는 향긋한 감국꽃이 반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