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제주 오름에서 부는 바람소리

제주영주 2009. 11. 22. 21:23
제주 오름에서 부는 바람소리
봉개 민오름에서 바라보는 교래곶자왈
   
  ▲ 민오름 초입에서.. 억새 너머로 절물오름이 아련하게 보인다.  

제주의 들녘은 오름과 곶자왈이 조화를 이루며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그 풍경 안에는 은빛 억새의 물결이 파도처럼 부서졌다 다시 일어서는 하얀 춤결로 출렁이는 섬.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맞은편에 위치한 민오름, 늦가을의 정취와 교래곶자왈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다. 오름은 작은 화산체를 말하는 제주어다. 오름에서 제주사람들은 소와 말을 키우며 촌락을 형성해 왔다. 또한, 18000신들의 고향으로 오름마다 전설이 깃들어 있다. 특히 삼벌초, 목호의 난, 4.3사건 등 항쟁의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이처럼 제주의 오름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픔을 보듬기도 하고 제주인들에겐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또한 사계절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자생식물의 보고이다.

민오름이란 민둥산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상 오름 이름이 무색할 만치 나무로 울창하다. 오름 이름으로 보아서는 예전에 우마를 방목시킬 만치 풀이 무성했으리라는 추측이 든다. 민오름 등산로에는 폐타이어로 제작된 고무매트, 나무계단 등으로 정비돼 예전보다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노랗게 물든 예덕나무 이파리가 깔려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나무를 향해 쳐다보면, 채 떨구지 못한 이파리가 스산한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은 숲을 헤집고 다니다 나뭇가지를 마구 두드린다. 모진 바람에 맞선 나무는 안간힘을 쓰며 울지 않으려 하나, 눈물 한잎 두잎 뚝 뚝 떨구고 만다. 나무의 울음소리는 음산하게 울다가도 어느새 파도를 이끌고 왔는지 쏴악~ 부서지는 파도 소리로 운다. 그 파도 소리는 머리를 맑게 할 뿐만 아니라 경쾌하여 들으면 들을수록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나무가 우는 까닭은 곱게 물든 이파리를 보듬어 주고 싶은 까닭일까? 어쩌면 자신의 분신과의 이별에 한없이 서러워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텅 빈 마음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늦가을날 나무는 한없이 애달프다. 근육질의 서어나무, 빨간 열매의 주인공 나도밤나무, 비목, 산딸나무, 가막살나무, 덜꿩나무, 연보랏빛 열매를 단 새비나무 등이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애처로운 눈길로 보내온다.

민오름은 북동쪽으로 터진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화구 너머에는 또 다른 봉우리가 마주하고 있어 마치 두 개의 오름처럼 보이나, 이는 하나로 형성된 오름이다. 민오름은 교래리 쪽에서 보면 마치 삼각뿔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무당들이 머리에 쓰는 고깔을 닮은 데서 연유하여 '무녀오름'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말굽형 화구를 따라 눈길을 주면 광활한 교래곶자왈, 그 너머로 오름군이 빙 둘러 다가온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북동쪽을 향해 교래곶자왈의 방대함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오름, 오름 정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암들은 분출하는 힘의 압력에 의해 순리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곶자왈이 형성됐다. 지하 10m까지 용암이 뒤엉켜 이뤄진 곶자왈, 이곳이 원시림으로 형성되기까지는 몇백 년이란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나무들은 흙이 아니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돌무더기 위에 뿌리를 내렸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 나무들은 오늘날까지 버터 왔다.

교래곶자왈 일대에는 남북방계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이점이 있다. 겨울날 노루들이 곶자왈 일대에서 서식하다가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한라산으로 이동한다.

또한, 곶자왈 지대에는 하천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구를 삼켜 버릴 듯한 폭우가 몰아쳐도 곶자왈 지대는 스펀지처럼 물을 흡입한다. 가뭄에도 이곳은 습기를 적당히 유지한다. 이처럼 곶자왈은 동물의 은신처이며, 생태계의 허파다.

선인들은 오름에 우마를 방목하기 위해 겨울에 오름을 태웠다. 오름을 태우고 나면 진드기 등 병충해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풀은 연하고 무성하게 자라 우마를 살찌우게 한다. 선인들은 오름에 불을 넣을 때는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 방화선을 구축하여 곶자왈 일대를 보호해 왔다. 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곶자왈 용암류가 산재해 있는 제주의 원시림, 그곳에서 우리는 숨 쉬고 살아가고 있다.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섬 안에서 부는 바람을 마시며.

   
  ▲ 민오름 정상에서 교래곶자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노랗게 물든 예덕나무 이파리가 깔린 민오름 등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