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꿈

제주야생화 3월, 난향이 그윽한 3월

제주영주 2009. 2. 20. 04:23

난향 그윽한 3월

 

제주의 봄은 가장 먼저 바다로부터 갯내음 넘실거리며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오름마다 봄을 알립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은 봄을 재촉하는 빗소리에 눈비비며 꽃눈을 틔우고 아름다운 희망을 전파합니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샛노란 유채꽃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앙상한 숲 속에는 얼음새꽃, 노루귀, 변산바람꽃이 어여쁘게 피어나 봄 소식을 전합니다.

 

돌담 너머로 향긋한 매화향기가 봄바람에 휘날릴 즈음, 솔숲 속에는 난향으로 봄을 예찬합니다. 겨우내 봄을 기다렸다는 듯이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트리며 꽃대를 올리는 춘란(春蘭),  솔숲에도 봄이 찾아왔음을 알려줍니다. 난과 식물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춘란은  봄을 알리는 식물이란 뜻으로 보춘화라고도 합니다.

 

난초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식물입니다. 예로부터 선인들은 매란국죽(梅蘭菊竹)인 사군자(四君子)의 굳은 절개와 기품을 닮으려 했습니다.

 

매화는 설한 속에서 고고하게 피는 청정무구한 품격을 군자에 비교하고, 국화는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피어나는 자태를 오상고절(傲霜孤節)로 표현했으며,  대나무는 곧은 빈속의 줄기와 사철 푸르른 잎을 허심(虛心)과 절개의 의미를 부여해 절개수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이중 난초는 심산유곡에서 피어 은은항 향기를 자랑하지 않아 유미인(幽美人)라 칭했습니다. 또한, 선조들은 난초의 잎은 무한한 기상과 강직함이 곧은 선비와 같으며, 꽃잎은 겸손함과 포용, 정숙함을 표현하며 꽃의 향기는 인향(人香)을 의미해 가까이 해왔습니다.

 

난초를 가까이하는 의미는 기다림과 수양의 자세로 군자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난초를 가까이 두고도 의미를 모른 채 퇴색된 인간의 욕심만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마구잡이로 채취해가는 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는 난초, 예전에는 제주 전역에 난초가 흔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멸종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하여도 자연을 떠난 식물은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 살 수 없듯이 빛을 잃은 조화나 다름이 없습니다.

향긋한 솔숲 길 따라 풍겨오는 난향은 세파에 때묻지 않는 새벽녘 공기처럼 신선합니다. 알싸한 새벽 공기를 닮은 난초의 향기처럼 군자의 도리를 지키는 자만이 인간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을 테지요.

솔숲 속에서 소박하게 피는 춘란, 그 고결한 향기가 봄을 알리며 심신을 풀어놓습니다. 심신을 풀어놓는 춘란의 향기는 달콤한 향기도 아닌 그저 바람과 함께 실려오는 내음으로 한 가닥의 꿈을 키워갑니다.  난향기에 군자의 마음이 솔바람를 타고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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