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과 야생화 15] 울창한 숲길 사이로 칡꽃향기 그윽
무속신앙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松堂)리. 송당이라는 마을 이름에서부터 '신당'의 뿌리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제주인의 정신적 모태인 '신당'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신당은 제주 사람들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는 성스러운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신들의 머무는 곳, 신당이 있다는 데서 '당오름'이라 불리는 송당 당오름은 비고 69m로 정도 야트막하다.
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탐방만이 아님을 전하듯 당오름 전사면에는 해송과 삼나무 등으로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그리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나 있지 않다.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길 수 없지만, 오름 기슭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1.36km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에는 그윽한 칡꽃이 바람결에 나풀거리며 시선을 붙잡는다. 산책로를 걸으며 사람들은 자연과 소통하며 하나가 되고,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자연이 우리에게 '말 없는 가르침'을 전하기에 탐방객들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마련이다.
숲길은 고요하여 더욱 쓸쓸하다. 간간이 숲을 헤집는 바람 소리만이 적막을 깨운다. 울창한 숲으로 우거진 산책로는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돈다. 적막감은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가장 안성맞춤이다. 적막감이 흐르는 이 길처럼 제주사람들은 의지할 데 없이 고독했었다. 변방의 섬, 제주사람들은 굴곡의 삶 속에서 초월적인 정신적 지주가 필요했다. 각 마을에는 한두 개 이상 신당이 있을 만큼 제주인의 삶과 밀접하다.
신당은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했던 장소로 제주인들은 신당을 찾아 마을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했다. 또한 어부와 해녀들은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에겐 이러한 신당은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 다스리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제주인의 정신적 역할을 했던 신당은 조선 시대 이형상 목사가 유교적 봉건 지배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당오백, 절오백'을 타파했다. 또한, 일본강점기에는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 근대시대에는 새마을운동에 의해 핍박의 대상으로 수난을 겪으면서 많은 신당이 사라졌다. 현재 신당은 230여 개 정도 남아 있다.
신당의 원조인 ‘본향당’은 송당 당오름 서사면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본향당은 ‘백주또’라는 여신을 모시는 할망당이다. 백주또는 소로소천국이라는 남신과 결혼을 하여 18명의 아들과 28명의 딸을 낳았다. 백주또 자손들은 제주 전역에 흩어져서 여러 마을의 신당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송당본향당에선 해마다 음력 1월, 2월, 7월, 10월 각 13일에 정기적으로 제를 올린다. 이처럼 당이 있어 유래된 당오름은 송당, 와산리, 고산, 동광리가 있다. 동광리의 당오름은 당이 사라진 채 이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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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오름 가는 길☞ 제주시 → 번영로 → 대천동사거리 좌회전 → 송당리 '제주신당지원조 송당본향당( 濟州神堂之元祖 松堂本鄕堂)' 표지석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제주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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