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등굽은 서우봉의 슬픔

제주영주 2010. 8. 9. 18:52

 오름과 야생화 11] 오름과 바다가 어우러져 출렁인다

 

서우봉

 

 

피로 얼룩진 4.3을 피해

바당과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사람들은 파래진 얼굴로

숨죽이며 피를 토해냈다

 

풀 한 포기조차

돌멩이조차

오름마저

노래진 넋

 

제주 전역에 널려 있는 모든 것들은

숨죽이며 울어야 했다

 

광기 서린 학살을 지켜보던

서우봉도

바다로 몸을 눕힌 채 울어야 했다.

 

 

슬픔에 잠긴 서우봉. 제주시에서 동쪽 일주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물빛 고운 함덕해변에 납작 엎드린 서우봉이 보인다. 함덕과 북촌 경계선에 있는 이 오름은 마치 더위를 식히듯 바다에 풍덩 빠져있는 듯하다.

물소가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듯하여 물소 서()자를 써서 서우봉(犀牛峰)이라 불리는 이 오름은 두 봉우리로 형성돼 있다. 북쪽 정상의 망오름과 남쪽 정상의 서모봉이 한 덩어리로 이어져 있다. 함덕해변 동쪽으로 가로누운 서우봉 기슭에는 이 오름 명칭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 오름 표지석에는 '서모봉'이라 쓰여 있다. 서모봉은 서쪽에 있는 산을 의미하는 듯하다. 서우봉은 북촌리 서쪽 편에 있다 해서 서산(西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물빛 고운 해변과 어우러진 서우봉은 그저 아름다운 풍광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서우봉의 속살을 밟지 않고서는 슬픔을 알 수 없는 오름이다. 우뚝 몸체를 일을 킬 여력도 없이 숨죽인 채 등짝만 내밀고 있는 오름 능선을 타고 오른다. 언제 이 오름에도 올레길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오름길마다 대명리조트가 세워 놓은 '올레트레킹 코스'란 푯말이 보인다. 올레길이란 명칭이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름길'이란 단어가 어울릴 것 같은데 요즘 올레길이 뜨면서 명칭을 남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우봉 능선은 숲 터널처럼 울창하여 무더운 여름날 산책코스로 적합하다. 소나무와 까마귀쪽나무가 제법 많이 눈에 띈다. 서모봉을 지나며 망오름으로 이어지는데, 망오름 정상은 넓은 공터로 돼 있다. 이곳에는 삼양의 원당망과 김녕의 입산망을 연결해주던 봉수대가 있었으나 사라진 지 오래다.

풀밭으로 조성된 망오름 정상에는 몇 기의 묘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 정상에서 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어촌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멀리 김녕 행원리 풍력발전기들이 바람 따라 돌아가는 풍광까지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발아래 펼쳐지는 다려도의 전경은 신선이 사는 선계처럼 신비롭다. 하얀 등대와 아담한 정자가 놓여 있는 다려도는 철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원앙이 날아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면 이처럼 모든 것은 평화로워 보인다. 오래전부터 신선만이 존재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진 하고 있는 이곳은 상흔으로 뒤범벅돼 있다. 망오름 북쪽 기슭에는 일제강점기의 상흔인 진지동굴이 있다. 또한, 이 오름 서쪽 기슭에 있는 함덕해변은 고려 대몽항쟁기에 삼벌초를 토벌하러 왔던 여몽연합군의 상륙지이기도 하다. 특히, 함덕백사장은 제주광기의 시대에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자행됐던 곳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억울한 영혼들의 슬픔이 시리다 못해 푸르딩딩 멍이 든 바당(바다)이 발아래 그림처럼 펼쳐진다. 굽이 휘어지는 오름길에 곱게 핀 순비기나무가 파릿한 얼굴을 내밀며 속삭이듯 향긋한 향내를 풍긴다. 수북이 쌓인 솔잎을 밟으며 해송 사이로 보이는 함덕서우봉해변을 껴안아 본다.

 

 

   
  ▲ 함덕해변에서 바라보는 '서우봉'.  

 

   
  ▲ '서모봉'표지석.  

 

   
  ▲ 서우봉 산책길.  

 

   
  ▲ 숲 터널처럼 울창한 서우봉 산책로.  

 

   
  ▲ 서우봉에서 바라보는 '다려도'.  

 

   
  ▲ 꼬불꼬불 휘어지는 길 너머로 함덕서우봉해변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제주투데이>

<문춘자 기자 / 저작권자ⓒ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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