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꽃 피는 ‘잃어버린 마을’ | ||||||||||||||||||||||||||||||||||||||||||||||||
[마을탐방]4·3 토벌대 작전으로 사라진 마을, '자리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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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자리왓'으로 향했다. 자리왓은 250여 년 전 남평 문씨가 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도 2구는 자리왓을 중심으로 지름기, 열류왓, 멀팟, 고들리왓, 상시머름, 솔도 등 7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마을 주민은 4·3 당시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아랫마을인 어도1구로 내려가 피신을 해야만 했다. 이곳을 떠난 주민은 돌아올 수 없는 비극을 맞으면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도2구 주민은 어도1구에 살다가 봉성리 입구 신명동을 형성하면서 정착했다. 어도2구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자리왓에는 늙은 팽나무만이 스산한 바람에 빈 가지를 흔들어대고 있다. 그날의 악몽을 씻어내듯 몸부림치는 팽나무의 흐느낌이 들려오는 듯하다. 팽나무 옆에는 '잃어버린 마을 자리왓'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나지막한 돌담, 올레길, 집터였던 곳에는 목멘 설움소리가 들려오는 듯 대나무의 서걱거림이 스산하다.
지름기의 고향이신 강재휴 할아버지(77)는 자리왓에 도착하자 악몽 같았던 그 당시의 상황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강 할아버지는 "신명서당 3학년에 다니고 있었는데 4·3 난리 국에도 강몽규 선생님은 학생들을 데리고 들에서 보따리 수업을 할 만큼 후학 양성에도 게을리하지 않을뿐더러 민족의식이 남달랐다."라면서 신명서당 터를 안내했다. 신명서당은 일본강점기에 세워져 구학문을 가르쳤으나 1940년대부터는 신학문을 가르쳤던 교육기관이었다. 당시 강몽규 선생이 어도1.2구의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정겨운 살내음이 풍겨오던 집과 집, 마을과 마을 길을 연결했던 자리왓 올레길을 따라 강 할아버지의 태가 묻힌 지름기로 향했다. 좁다란 올레길을 거니노라면 금방이라도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뛰어나올 듯하다. 또는 물허벅을 지고 가는 처자와 마주칠 듯싶다. 이런 착각이 일 만큼 자리왓 올레길은 제주의 옛정취가 풍겨온다.
강 할아버지는 "4·3사건이 일어나자 마을에 불을 붙인다 하여 부랴부랴 어도1구에 내려가 간신이 목숨을 건졌다."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이닥치는 토벌대들의 습격에 살아지카부덴 못했주"라면서 그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다시는 이 땅에 4·3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잃어버린 마을'표지석이 세워졌으나 그 비통함은 달래 길이 없다. 꽃이 핀다/눈물 꽃이 설움 삼키며/4월의 밤을/숨죽이며 불 밝힌다/촛불처럼 사르르 사르르/눈물 꽃으로 피다 지는/ 4월의 꽃이여.<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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