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을탐방

세월도 빗겨가는 마을 ‘두모리’

제주영주 2013. 12. 30. 12:29

세월도 빗겨가는 마을 ‘두모리’

시린 겨울 바다가 마을을 집어삼킬 듯 울부짖는다. 하얀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파도의 외침이 귓전을 울린다. 온종일 울어대던 바다도 노을빛에 서서히 파도를 잠재운다.

해거름 마을 ‘두모리(頭毛里)’로 행했다. 한경면 두모리는 제주시 공항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다.

고창남 두모리 노인회장은 “예부터 인심이 좋고 화합이 잘 이뤄진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두모리는 1991년 화합선도 마을로 선정된 바 있다. 또 고 회장은 “우리 마을은 지형적으로 오목한 곳이 많아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며 멋물을 소개했다. ‘멋물’은 옛날 강 씨라는 사람이 소들을 몰고 이곳을 지나가는데 송아지 한 마리가 없어졌다. 강 씨가 송아지를 찾아 헤매다가 숲 속에서 물을 먹고 있는 송아지를 발견했다. 3m 정도의 넓은 못에서 샘이 솟는 것이었다. 그 후로 이 물은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식수와 우마 급수로 상용됐다. 고 회장은 “멋물은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산간식수로 사용됐다”고 했다.

 

두모리 노인회관 마당 앞에 자연 연못인 이 ‘멋물’은 2007년 ‘쌈지공원’으로 조성됐다. 멋물 가운데 멋스러운 정자를 설치하고 분수를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휴식처로 주목을 받고 있다. ‘멋물쌈지공원’은 한경면 판포권 농촌 마을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판포권 농촌 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판포, 두모, 금등, 신창 4개 마을 권역을 ‘해거름마을’ 주제로 체험을 추진하고 있다. ‘멋물쌈지공원’에서 남쪽으로 약 200m 정도 속칭 멋동산에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고 회장에 따르면 이 마을은 예부터 효자가 많았다고 한다. 원래 이 효자비는 한경면사무소 옆에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한경면사무소 신축과 도로를 확장하면서 멋동산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효자비의 주인공은 ‘고윤문’이다. 삼동설한에 어머니께서 바닷고기를 먹고 싶다는 말에 고윤문은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으려고 하는 찰나에 물고기가 파도에 휩쓸려 올라왔다. 그는 그 물고기로 어머니를 공양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껏 모시기 위해 아내를 얻지 않았다고 한다. 고 회장은 “효자비는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라며 “희미해져 가는 효행사상 고취에 앞장설 수 있도록 행정에서 ‘효자비’를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70년대 세워진 ‘효자비’ 안내판 글씨는 지워져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효자비 주변은 가시덤불로 에워싸여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두모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옹기종기 모인 나지막한 지붕들이 정겹게 펼쳐진다. 고즈넉한 마을 길에서 해안 쪽으로 들어가면 속칭 ‘모살동산’이 있다. 두모리 포구에서 동쪽에 위치한 이 동산은 모래로 쌓인 동산이라 하여 붙여졌다. 고 회장은 “옛날 지역주민들이 모래의 유실을 막기 위해 담을 쌓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해풍 등으로 인해 모래가 많이 유실됐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모살동산에서 두모 포구로 향하는 길에는 이 마을의 특작물인 양배추밭이 제법 보인다. 고 회장은 “유일하게 감귤농사를 짓지 않는 마을이 두모리”라고 했다. 두모리는 해안가 특성에 맞게 주로 마늘과 양파, 양배추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해거름 마을’ 브랜드에 걸맞은 두모포구로 행했다. 이 포구는 코짓개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두모포구는 ‘내수여’라는 빌레를 의지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두모포구 방파제는 약 270m까지 길게 뻗어 있다. 이 포구 옆에는 정자와 놀이터가 설치돼 있다. 또한, 방어유적인 ‘연대’와 어부들의 등불인 ‘도대불’이 세워져 있다. 두모연대에 올라서 보면 아담한 두모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마을은 160여 가구로 조용하다. 북적거리는 도심지와는 달리 한가롭다. 마치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착각이 들만큼 세월의 흔적을 빗겨간 마을처럼 녹녹함이 고스란히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