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꿈

태풍에도 품어내는그윽한 향기

제주영주 2006. 7. 11. 11:03

태풍에도 품어내는그윽한 향기

 
 
성읍민속마을 팽나무곁 '나도풍란' 
 
 
 
 
 
 
    
 
▲ 나도풍란의 향기를 맡을 수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여름이면 초록 이끼로 뒤덮어 버릴 듯한 초록 물이 고여 흐르는 숲에서도 그윽한 풍란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윽한 풍란의 향기를 찾아서 떠나보았으나, 순순하게 자연에서 자라는 풍란은 찾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고고하면서도 우아한 풍란은 자생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는 무분별하게 채취하는 이들 때문에 지구상에서 곧 멸종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사라져 가는 흔적입니다.

    
 
▲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곳에 있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연 그대로 지켜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성읍민속마을에 가면 풍란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주의 옛 정취가 묻어나는 성읍민속마을로 향했습니다.

몇백 년의 세월을 지켜본 늙은 팽나무는 파르스름한 초록 이끼로 새로운 꿈의 결실을 낳았습니다.

늙은 팽나무는 석곡과 풍란이 자랄 수 있도록 어미의 가슴처럼 따스한 체온으로 싱그러운 보금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난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복원해 놓은 것입니다.
복원해 놓은 덕분에 그나마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나도풍란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윽한 향기를 맡기에는 너무나 먼 곳에 있습니다.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 봐야만 눈빛 한번 제대로 맞출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어 꽃입술을 제대로 볼 수 없으나 분명히 홍자빛 반점을 가진 꽃입술이 살포시 웃고 있을 것입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는 나도풍란을 담기 위해서 용을 쓰다 보니 어깨와 팔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울 밑에선 봉선화의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가 내 모습이 처량한지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풍란과 눈맞춤을 하려고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 봐야 했고, 바람에 춤을 추며 나를 내려다 보는 나도풍란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습니다..

늙은 팽나무 가슴에 붙어서 가느다란 뿌리로 뻗어가는 풍란의 모습은 슬픈 곡예사처럼 보입니다. 사실 슬픈 곡예사는 풍란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나도풍란의 향기도 아니었으며, 그걸 담아내려고 요리조리 방향을 틀어가면서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봐야 하는 나였습니다.

태풍 '에위니아'의 위력에 나도풍란은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는데도 고개가 아프도록 하늘을 쳐다보면서 나도풍란을 담으려고 바람이 잠시 멈추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 주저앉고 있어도 고개가 아프도록 위를 쳐다봐야 했습니다.
나도풍란이 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저앉고 있어도 고개가 아프도록 위를 쳐다봐야 했고 나도풍란의 홍자색 반점이 보이도록 웃고 있는 꽃입술를 담으려고 용을 쓰는 나였습니다.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보아도 좋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늙은 팽나무의 보금자리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도풍란은 행복해 보입니다.

손에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어 다행입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그윽한 꽃향기가 풍겨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