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 폭우가 시원스레 쏟아지고 나면 뭉게구름은 말간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말간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를 무렵 싱그러운 여름 숲에서 눈여겨보았던
난초도 꽃을 피웠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은 이미 숲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꽃이 피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습니다.
처음 보는 난초인지라 설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싱그러운 잎의 끝은 뾰족하고 2~3개의 잎이 돋아나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옥잠난초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 나리난초도 아닐 것이고 처음 보는 난초임은 틀림 없다 생각하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자그마한 암자색 꽃봉오리가 꽃입술을 활짝 열면 정확하게 이름은 알 수 있지만,
꽃이 피기를 기다리면서 이름을 찾아 보았습니다.
이름도 모른 채 꽃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이름을 알고 바라보면 아주 친밀한 관계처럼
서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바라보면 꽃은 제일 먼저 내게로 다가와 미소를 지어 줍니다.
자그마한 꽃봉오리가 활짝 피는데는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으로 보냈던 난초와 눈맞춤의 시간을 갖기로 마음 먹고 숲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분명 살며시 꽃잎을 열어 놓고 반갑게 맞아 줄거라는 생각에 셀레는 마음은 뭉게구름마냥 부풀어 올랐습니다.
가만가만 귀 기울이면서 걷다 보면 극성을 부리는 모기소리가 엥엥거리며 귓전을 울리기도 하지만,
흑난초와 눈맞춤을 하려 가는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 찬 행복의 시간입니다.
그다지 길지도 않은 숲길이 왠지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때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어깨를 툭툭치면서 나의 성급한 마음을 가다듬으라고 일깨워 줍니다.
더디게 느껴지는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온통 머릿속에는 오로지 흑난초에 관한 생각뿐입니다.
오늘은 어느 만큼 자랐을까? 꽃은 만개했을까? 꽃의 색감은 어떤 빛깔을 지니고 있을까?
꽃의 크기는 어느 만큼 할까? 그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장마로 인해서 숲은 어둡고 칙칙하기만 합니다. 칙칙한 숲은 빛을 몰아내고는 어둠까지 몰고 왔는지
한줄기 빛이 나뭇잎 사이로 숨어버렸습니다. 빛과 어둠이 숨바꼭질을 하다가 잠시 빛이 들어왔나 싶으면 이내 살며시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어와 꽃잎을 가려 놓습니다.
어둠이 내려 앉은 숲에서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암자색 꽃잎이 살며시 흔드는 몸짓입니다.
틀림없는 흑난초입니다. 암자색 꽃이 자그마한 입술로 속삭여 줍니다.
흑난초는 꽃색이 흑색처럼 보인다 하여 흑난초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몸짓을 지켜 보면서 한 줄기 빛이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자그마한 꽃잎이 바람에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자그마한 꽃잎의 춤추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그 모습은 마치 나비 요정 같습니다.
앙증맞은 요정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떼거지로 달려드는 모기떼들 한테 꼼짝없이 당하면서도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흑난초와 헤어지고 나서 보니 온 몸이 모기에 물려 큼직한 두드러기로 장식을 했습니다.
두드러기는 어느새 한떨기 꽃으로 총총 피어나 흑난초의 징표마냥 암자색으로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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