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꿈

하얀 깃발을 펄럭이는 백운란

제주영주 2006. 9. 14. 12:06

 

▲ 백운란

 

여름철에는 난과 식물을 많이 볼 수 있는 계절입니다.

옥잠난초를 비롯해서 천마,  타래난초,  닭의난초, 잠자리난초, 대흥란, 하늘거리며 피어오르는데 내 마음에는 오로지 백운란으로 가득 찼습니다.

 

난초를 사랑하기 이전에는  난초 모두가 하나같이 비슷했습니다.

그저 초록 풀에 지나지 않는 초록몸짓에 불과했습니다.  간절한 그리움조차 없었던 난초들,

이름조차 몰랐던 난초들, 그 모두가 들꽃이란 이름으로 불렀던 아름다움에 이제는 제대로 이름을 부를 수 있어 기쁩니다.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난초들이 어느 날 나와의 눈맞춤이 이뤄지면서 하나씩 알게 되어가는 기쁨, 풀숲에 숨겨진 보물이라도 찾아내듯이 난초의 몸짓과 조우하는 날에는 가장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문뜩  내게 그리움으로 다가와 버린 난초는 나의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강한 집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고두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난초를 찾아서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자연에서 홀로 생겨나는 일이거늘, 올해 볼 수 없으면  이듬해, 이듬해 볼 수 없다면

두고두고 그리워하다 어느 날 불쑥 내게로 올 수 있는 난초라는 것을 잊고는 가끔   꼭 만나보고 싶은 나의 욕심에 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욕심 때문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도 숲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욕심이 없었다면 화창한 날만 선택해서 갔었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찾아낸 것만 편안하게 디카에 담아왔을 겁니다.

 

자신의 힘으로 얻는 것은 그 무엇이든 가장 값진 보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 나섰으며 애지중지 아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기다렸던 백운란 꽃이 피기 시작하자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백운란'으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올 여름에 만나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이나 백운란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서 '백운라'이란 말이 불쑥 튀어나와 함께하는 동호인들에게 속내를 들키고 말았습니다.

 

들꽃을 담아내는 일은 아름답게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입니다.

 

난이라 하면 무턱대고 채취해가는 사람들 때문에 난과 식물들이 사라져가고 있어 귀한 식물을 보러 갈 때면 늘 조바심이 생겨났습니다.

 

작년에 눈맞춤을 했던 백운란을 찾아서 여름 숲길을 걸었습니다.

이슬비에 온몸을 적신 조릿대 숲길을 지나 몇 개의 계곡을 건너 울창한 여름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작년에 눈맞춤을 나눴던 백운란이 작년보다는 제대로 자라지 못했는지 개체수가 적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나마 그 자리에 백운란이 피어 준 것만으로 고마웠습니다.

올해도 내가 찾아 올 거라고 믿어준 백운란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울창한 나무 숲 그늘에서 자그마한 하얀 꽃잎을 살짝 펄럭이고 있는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습니다.

언뜻 보아서는 사철란과 비슷합니다. 많이 자라야 20cm도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키에  대나무처럼 마디를 이루고 있으며 순판은 자그마한 하얀 깃발을 조심스레 펄럭이는 듯 보이기도 하고 또는 자그마한 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쉽게 눈에 띄지 않아 자칫하면 밟힐 수 있을 만큼 자그마합니다.

그 모습이  앙증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외롭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깊은 산중에 외롭게 피어난 백운란과 작별을 하고 하산하는 발걸음은 왠지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알고 있는지 하산길에 백운란이 살며시 눈에 띄어 준 덕분에 허전한 마음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습니다.

 

백운란은 낙엽수림대 숲 속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난은 아닙니다.

백운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백운란'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 발견된 백운산에서는

백운란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니 이는 난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서 사라진듯하니, 난을 사랑하는 마음은 혼자만이 보는 것이 아니라 산 나그네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도록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난을 사랑하는 자들의 첫 가짐이라 생각합니다.

 

고고한 난처럼 우리 역시 난을 바라볼 때는 고고한 마음으로 난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에 감사하고 또한 난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후 좋은 기회가 있어 백운락 군락지를 보게 되었는데 자그마한 하얀 깃발을 펄럭이듯 순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앙증스럽기만 했습니다.

 

이경서 선생님 덕분에 녹백운란과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녹백운란 앞에 앉았으나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백운란으로 볼 수 있을 만큼이나 특별하게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없어 보이나 , 자세히 들여보면  녹백운란은 백운란에 비해 훨씬 싱그러워 보입니다. 이는 화경과 꽃의 악편에 녹색을 띠기 때문에 백운란에 비해 싱그러워 보입니다.

 

순판이 마치 깃발처럼 보인데 유래하여  입술, 순판이란  합성어로  학명은 Vexillabium입니다.

또한, 신기한것은 백운란 악편이 마치 귀처럼 생겼다고 하여 모니터에서 확대해서 보니 신기하게도 귀처럼 생겼습니다.

무지한 눈으로만 바라보았던 백운란을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란곡 이경서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최초 채집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소명을 채집자인  中井의 이름과 같은  nakaianum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산하에 자라는 식물들을 우리가 먼저 찾아내  우리 종소명을   붙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들어 야생화 동호회가 늘어나면서 소중한 우리 들꽃이 무분별하게 사라지는 예가 많은데 우리 산하의 들꽃들은 자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소중한 재산임으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합니다.

 

 

 

 

▲녹백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