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하얀 솜털이 부드러운
한라꽃향유
오름마다 보랏빛으로 물들다.가을향기로 피어나는 꽃, 향유의 계절.
민틋한 오름 등선마다 보랏빛으로 곱게 물든 늦가을입니다. 가을 향기가 갈바람에 살며시 나부끼며 오름을 끌어안습니다. 끊어질 듯한 오름 능선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연이어지며 다가와 앉습니다.
넉넉함 속에 쓸쓸함이 깃든 계절, 가을산은 활활 타오르는 듯 뜨거운 색감을 지녔으나, 한 마디 외칠 소리마저 잊어버린 듯, 화려함 속에 고요함이 깃든 저녁 햇살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절정에 온유함이 스며든 계절, 원색을 우려낸 빛깔처럼 은은한 저녁노을 빛입니다.
가을향기는 어떤 향기일까요? 상큼한 초록의 향내를 벗어난 곰삭힌 어머님의 손맛 같은 향기, 저녁밥을 짓는 향기, 반겨주는 이 없어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향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은빛 억새처럼 은은한 빛이기도 하고 억새풀 갓 털이 텅 빈 가슴에 상념의 깃털로 꽂히기도 합니다. 그 무언이 빛처럼 꽂히는 쓸쓸함, 외로움.
이 가을이 가전에 가을향기를 느껴봐야겠지요.
오름 등선마다 보랏빛으로 물들어 놓은 아름다운 우리의 들꽃, 꽃향유가 흐드러지게 피어 가을향기로 여심을 사로잡습니다.
자그마한 꽃송이들이 오밀조밀 모여서 이삭꽃차례로 꽃이 피는 꿀풀과인 향유 식구로는 꽃향유, 가는잎향유, 애기향유, 좀향유, 한라꽃향유가 있습니다. 민틋한 오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우리의 들꽃입니다.
꽃향유는 짙은 보랏빛에서 붉은 자줏빛으로 꽃 무더기를 이루며 화려함으로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화려한 듯하나 전혀 화려하지 않은 수수함을 느낄 수 있는 정감이 가는 들꽃입니다.
꽃 명에서 알 수 있듯이 향유는 향기가 나는 꽃입니다. 그래서 꽃말도 “가을향기”입니다. 잎 뒷면에 나 있는 선점에서 향을 배출하기 때문에 향유라 합니다. 꽃에서도 짙은 향기가 납니다.
흐드러지게 핀 보랏빛 꽃향유들이 꽃 무더기를 이루며 가을향기를 담고 오름등선마다 예쁘게 피어 가을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향유는 꽃향유에 비해 옅은 보랏빛이며 화려함이 없습니다. 꽃향유는 향유에 비해 아름답게 피며 붉은 빛을 띠는 짙은 보랏빛입니다.
가는잎향유는 잎이 가늘어서 가는잎향유라 합니다. 향유와 가는잎향유, 애기향유는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며 애기향유가 한라의 땅에서 예쁘게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기향유를 만났어도 그저 꽃향유로 착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한라의 땅에서 자라는 향유로는 꽃향유, 한라꽃향유, 좀향유가 있습니다. 오름마다 붉은 자줏빛으로 물들어 놓고 있는 것을 죄다 꽃향유라 불렀습니다.
이전부터 한라꽃향유는 오름에서 그 어느 향유보다 우아하게 꽃을 피웠지만, 전문가들의 눈에 띄기 전까지는 그저 꽃향유라 불렀습니다.
한라꽃향유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00년도 이영노박사에 의해 학계에 보고되면서 우아한 한라꽃향유가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라꽃향유는 애기꽃향유처럼 작으며 꽃향유에 비해 하얀 솜털이 수북하게 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꽃향유나 한라꽃향유는 향유 식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단, 한라꽃향유는 꽃향유에 비해 하얀 긴 솜털이 줄기와 잎 뒷면에 빽빽하게 나 있어 밍크코트라도 걸쳐 있는 듯 우아하게 보입니다. 꽃향유에 비해 납작한 수상화서로 꽃이 피는 한라꽃향유는 키가 작은 편입니다.
꽃향유는 한라꽃향유에 비해 키가 큰 편이나 제주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대체로 키가 작습니다. 이는 모진 바람과 싸워야 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키로 구분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좀향유는 가을날 한라산을 오르다 보면 땅에 엎드린 듯 아주 자그마한 보랏빛 꽃송이들이 도란도란 모여 땅을 기다시피 앉은뱅이 꽃으로 피는 앙증맞은 꽃이 눈에 띕니다.
이들을 상세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라꽃향유면 어떻고 꽃향유면 어떻습니까. 이 가을날 세파에 찌든 마음에 가을향기로 심신을 달려주는 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충분합니다.
자그마한 꽃송이들이 촘촘히 모여서 꽃이 되는 꽃, 가을향기를 담고 피어나는 꽃, 짙은 보랏빛 꽃향유가 피는 오름에서 늦가을날의 향기를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