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생의 마지막 까지 진지한 삶을 잃지 않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주영주 2006. 11. 14. 21:58

 

 

좀딱취

 

 

갈바람에 단풍잎이 날개도 없이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날개도 없이 내려앉는  단풍잎 하나가 쓸쓸한 마음이라도 달래 주듯 화사하게 웃으며 내려앉습니다.  좀딱취를 만나려 가는 숲길은 쓸쓸한  숲길입니다. 휑하니 바람이라 불면 우수수 낙엽이 숲길을 휘날리며 늦가을의 마지막 편지가 곱게 쌓여갑니다.  간간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살며시 내려오다 수줍은 듯 나무 등 뒤로  숨어버립니다.

 

 한여름 날 아름다움을 뽐냈던 꽃들, 초가을날 파란 하늘가로 고개를 길게 빼고 고고한 모습으로 또는 고독한 모습으로 가을의 상념으로 상기 된 보랏빛 가을꽃들이 사라질 무렵에야 수줍은 듯 자그마한 하얀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는 좀딱취를 만나려 가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하다 보니 늦어졌습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한라산에는 이미 모든 꽃들이 혹독한 겨울을 위해 겨울나기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그 흔하던 꽃들조차 만나기 힘듭니다.

그래도  한라산 자락에 늦가을까지 남아 있어주는 것은 좀딱취입니다.

하지만, 좀딱취도 매서운 바람에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 할 시기입니다.

 

국화과인 좀딱취꽃은 화려하고 큼직한 꽃들이 사라질 무렵이면 기다렸단 듯이,  하얀 얼굴이  수줍은 햇살처럼 수줍게 피어납니다.

 

좀딱취는 가을이면 한라산 등반코스에서 볼 수 있으나, 시기적으로 늦게까지 남아 있을 만한 곳을 찾아서 오로지 좀딱취만을 보기 위해서 봄철에 자주 다녔던 숲을 선택했습니다.


 

종이를 잘라서 만들어 놓은 듯한 하얀 자그마한 꽃이 바람에 날아갈 듯, 가냘픈 좀딱취가 늦가을의 상념 속에서 피어납니다.

 

좀딱취는 여름부터 꽃봉오리를 가느다랗게 움츠리고 있다가 단풍잎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면 갈래갈래 갈라진 하얀 꽃송이를 활짝 펼칩니다.

 

금방 꽃이 필때는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입술을 보듬기며 활짝 핍니다.

빨간 꽃술 하나씩 감싸 안은 듯 다섯 갈래의 가느다란 하얀 꽃잎은  고운 입술을 보듬기며 피어납니다. 세 개의 꽃술을 기둥 삼아 날개를 펼치는 작은 무희의 춤결처럼  아름답습니다. 

 

 

 

 

 

 

좀딱취는 꽃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도 아름다운 꽃입니다.

아름답게 피었다가 아름답게 지는  좀딱취의 뒤안길은 슬픔을 승화시킨 춤사위로 시작됩니다.

좀딱취처럼  아름답게 피었다가 아름답게 질 수 있는 생이면 좋겠습니다.

추한 모습도 아니며 가련한 모습도 아닌, 생의 마지막까지  삶에  진지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휑하니 갈바람이 불어오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은빛 부챗살을 활짝 펼치고는 부채춤을 추는 아름다운 우리의 들꽃, 좀딱취는 자그마한 몸매에  은빛 부채춤을 사뿐사뿐 낙엽을  휘감듯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실처럼 펼쳐지는 부챗살 사이로  한 줌의 햇살이 살포시 내려오면,

낙엽은 관객이 되어 뜨거운 갈채를 보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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