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햇살처럼 찬란하여라

제주영주 2007. 4. 25. 12:54

 

 


풀빛으로 물들어가는 숲길은 아름다운 길이며 사색의 길입니다.
아가 손톱만큼씩 돋아나는 연초록 잎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풀꽃 한 송이 만나지 못한다 하여도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는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숲 속에 있는 시간만큼은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며 사색의 시간이 됩니다.


마흔여섯 번째의 이랑을 일구면서도 연둣빛으로 물들지 못한 나무 한그루가 희망의 빛을 찾아 숲 속을 헤맵니다.


희망의 빛이 몸부림친다 하여도 생각주머니 속에는 퇴색되어가는  빛이 담겨 있기 때문에 연둣빛으로 물들지 못했나 봅니다.


연둣빛으로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숲을 사랑하는 마음속에 언제나 싱그러움으로 팔랑거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실바람에 팔랑거리는 연초록 물결 속에서 나뭇잎처럼 새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에 싱그러운 생각으로 가득 채워 놓습니다.

 

연둣빛 이파리 팔랑거리는 숲길이 끝나지 않을 듯한 숲길을 걸었습니다.

 


어디선가 무섭게 울부짖는 노루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혹시 들개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는 무서움에  소름이 끼치지만  오던 길을 뒤돌아서 갈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을 졸이면서도 목적지가 있는 한, 포기를 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햇살처럼 찬란한 금붓꽃을 만나기 위해서지요.


작년에 눈여겨 두었던 금붓꽃과의 만남을 기다렸습니다. 금붓꽃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의 길입니다.
작년에는 몇 송이만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어 그 귀함은 안타까웠습니다.
혹시나 훼손이 될까 하는 우려에 공개를 못 했습니다.


어딘가에  다시 찾아보면 군락으로 만날 수 있거나 아니면,
노랑붓꽃, 노랑무늬붓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탐사에 나셨습니다.

 

 

금붓꽃이 제주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주에도 햇살처럼 빛나는 금붓꽃이 자생합니다.
발에 밟힐 정도로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입니까?

 

꽃봉오리 모양이 붓과 비슷하다 하여 붓꽃이란 이름을 가진 붓꽃 식구도 다양합니다.

붓꽃, 각시처럼 아담하다 하여 각시붓꽃,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난쟁이붓꽃,  뿌리를 풀칠솔로 사용했다 하여 '솔붓꽃' 황금처럼 샛노란 금붓꽃, 꽃대 하나에 두 개의 꽃이 피는 노랑붓꽃, 노랑무늬가 새겨진 노랑무늬붓꽃, 순백의 꽃으로 피는 흰붓꽃 귀화식물인 등심붓꽃이 있습니다.

 

 

▲금붓꽃 학명으로는 Iris(무지개의  여신을 뜻함) savatieri(사람이름) 꽃말은 ‘기쁜 소식’

 

금붓꽃을 찾아 헤매던 중  무지개의 여신의 뜻밖에 기쁜 소식을 보내온 듯,  눈앞에 황홀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그 얼마나 황홀한 만남이었는지 아름다운 순백의 꽃잎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노란빛이 전혀 물들지 않는 붓꽃, 금붓꽃보다 꽃이 크며 꽃자루가 달라 보였으나 알 수 없었습니다. 흰붓꽃인가 하고 찾아보니 흰붓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얀 얼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고 찾아 보았으나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다보다 시린물빛으로 피는 각시붓꽃과의 만남은 여러 번 있었으나 설마 각시붓꽃일 가능성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고정관념 속에 각시붓꽃은 눈물짓는 꽃처럼 시린 눈빛으로 박혀버렸나 봅니다.

흰각시붓꽃을 만났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눈물짓는 각시붓꽃이 새색시 얼굴처럼  하얀 꽃으로 탄생되었나 봅니다.

흰각시붓꽃은 드물게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무지개의 여신이 보내온 기쁜 소식입니다.

순백의 꽃잎을 나풀거리며 보내온 기쁜 소식입니다.

금빛, 청잣빛, 흰빛, 모두 한데 어우러져 화음을 이루는 오름에서 4월을 보냅니다.

흰각시붓꽃, 금붓꽃과 어우러지는 화음 속에 햇살처럼 찬란한 오월의 강을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