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생명의 숲…햇살 주워 주머니에 담고

제주영주 2006. 3. 8. 18:55

생명의 숲…햇살 주워 주머니에 담고 
[꽃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숲! 탐스러운 보석으로 안겨오다.
 

한겨울에도 싱그러움을 유지하는 초록 숲으로 갔습니다.
한여름 날에 초록 이파리로 하늘을 가득 채워 놓았던 숲, 그 숲에 가면 겨울이지만, 싱그러운 이파리들이 나풀거리며 여름날의 추억으로 안겨오기도 합니다.

 

▲ 한겨울에도 푸르른 생명으로 넘쳐나는 생명의 숲.
 

숲길에는 마른 낙엽이 수북이 깔려 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지나간 가을을 떠올리거나 겨울 한나절의 햇살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는 약 1.5km 되는 숲길을 마냥 걷습니다.

자연의 숲길이라 마냥 걸어도 즐겁기만 한 숲, 함박눈이 펄펄 휘날리는 날에 초록으로 넘쳐나는 숲길을 걷고 싶은 충동 때문일까요? 초록으로 넘쳐나는 숲을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환상적인 트리로 가득 채워 놓을 듯한 숲을 생각한 때문일까요?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 이 숲길을 거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감기로 몇 날 며칠 고생하는 바람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머릿속에서 그리던 환상의 숲은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무엇보다도 함박눈이 휘날리는 날에 겨울딸기를 어여쁘게 렌즈 속으로 담고 싶은 나의 욕심 때문에 함박눈이 휘날리는 날 초록 숲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폭설이 내린 흔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함박눈이 휘날리지 않아도 그저 초록 숲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입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숲에서 초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빨간 열매들이 동공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구슬 같은 청미래덩굴이 하늘에 걸려 있기도 하며, 빨간 보석함에 흑진주를 살며시 보여주는 여우팥,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빨가니 잘 익은 남오미자열매가 반기는가 하면, 초록이파리 사이로 빨간 구슬을 슬그머니 내미는 자금우, 백량금 열매가 사랑의 열매처럼 반짝입니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숲은 탐스러운 흑진주, 심해에서 건져 올렸는지 붉게 타오르는 산호보석을 선물해줍니다. 마음껏 가져도 될듯합니다. 대자연이 주는 값진 보석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둬야 합니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 빨가니 익어가는 겨울딸기 열매가 맺혀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많은 겨울딸기가 탐스럽게 열렸어도 한 알 따먹지 않고 남겨뒀는데 누가 딱 먹었는지 보이지 않아 서운하던 차에 이파리 뒤에 숨어 있는 것을 겨우 발견했습니다.

 

▲ 먹음직스럽죠?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고스란히 남겨둬야 합니다. 겨울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겨울딸기라 합니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음에 안도의 숨을 돌렸습니다. 겨울딸기를 보려 진주에서 내려오는 언니가 있는데, 제주에 오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겨울딸기를 찾았던 것입니다.

겨울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겨울딸기라 부르는 겨울딸기는 상록성 덩굴성이며 여름에 하얀 꽃이 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숲에서만 자란다고 하여 타지방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자그마한 열매를 초록이파리 위에 올려놓고 한 컷 담아 봤습니다. 겨울딸기를 어여쁘게 담아보려고 노력했으나 그다지 어여쁘게 나오지 않았네요.

겨울딸기와 작별을 하여 우리만의 숨겨진 귀한 식물을 보러 갔습니다. 가끔 우리가 지켜줘야 할 식물에 대해서는 감시차 다니기도 합니다. 지난여름에는 천백고지에 수없이 감시차 다녔으며, 그 식물이 그대로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이상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올 겨울은 이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을 수없이 다녀야 할듯합니다. 이 식물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귀하다는 것을 모른 채 지내온 제주사람들입니다. 보도에 의해 널리 알려진 식물이기도 하며, 현재로서는 수난을 겪고 있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한국특산종 제주고사리삼을 만나려 갔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초록이파리 다섯 잎을 펼치고 닭발처럼 생긴 것이 하늘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고사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산꽃고사리삼하고도 전혀 다릅니다.
 
▲ 한국특산종 제주고사리삼 입니다.
 
닭발처럼 생긴 것은 포자입니다. 3개월이 지나서도 포자는 그대로 싱싱한 채 있습니다. 제주고사리삼으로 가득 채워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곶자왈사람들에 의하면 제주고사리삼은 곶자왈이 낳은 최대의 값진 보석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제주고사리삼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자생지는 곶자왈이라는 것입니다. 곶자왈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희귀성 제주고사리삼이 있었서만은 아닙니다.

곶자왈은 난대림 온대림이 공존하기 때문에 독특한 식생이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천혜의 숲으로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천혜의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내 안에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숲이 있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초록 숲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겨봅니다. 영원한 생명의 숲이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