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열병처럼 톡 터트리며 봄 노래 부르는 꽃

제주영주 2006. 3. 8. 19:13

[꽃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 고개 내민 귀여운 새끼노루귀

 

▲ 새끼노루귀 

노루귀가 피었네.” “새끼노루귀가 피었네.” 노래를 부르고 있으나 정작 노루귀가 피어 있는 숲으로 가는 길은 무서운 바람이 숲을 휘감기며 울부짖기 때문에 소름이 끼칠 만큼이나 음산합니다. 겨울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소리는 시원스레 부서지는 파도소리 흉내를 내면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가슴을 적시기도 하지만, 목장 길에서 들려오는 겨울바람의 소리는 음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섭게 울어대는 바람소리를 따라 겨울 나목의 수군거림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포근한 숲은 바람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바람을 잠재우기 시작했습니다. 포근한 숲에서는 바람도 울음을 그치면서 정적만이 흐릅니다. 숲의 고요함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는 봄꽃들이 제법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언 땅을 밀어내며 일어서는 새끼노루귀들이 기특하기만 합니다.
햇살을 향해 고개를 드는 새끼노루귀는 갓 태어난 노루처럼 뽀송뽀송한 하얀 털을 한 줄기 햇살에 말리고 있습니다.
“겨울바람이 싸하게 맴돌고 있는걸, 발밑을 녹여줄 햇살을 끌어당기고 싶어. ”새끼노루귀가 햇살을 향해 살며시 속삭입니다.
노루귀는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하여 노루귀라 합니다. 꽃이 진 후의 모습도 사랑스럽습니다. 귀여운 아기 노루의 귀처럼 귀여운 잎이 있거든요.

우리나라에는 노루귀, 새끼노루귀. 섬노루귀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라는 노루귀는 새끼노루귀입니다.

노루귀는 아이들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꽃입니다. 연약한 힘으로 언 땅을 밀어내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당당함이 있습니다.

깜찍하고 귀여워 보이는 노루귀에게도 남모를 슬픔이 있답니다. 그 슬픔을 아는 이가 그다지 많지는 않답니다. 슬픔을 감춰놓았기에 그 어디에 슬픔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노루귀는 귀여운 아가처럼 사랑스런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우리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노루귀를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  새끼노루귀. 

노루귀는 슬프게도 꽃잎이 없답니다. 꽃잎이 퇴화되어 꽃받침으로 변했답니다. 꽃처럼 보이는 잎이 꽃받침입니다. 꽃받침은 6장에서 많게는 9장까지 있습니다. 꽃잎은 없지만 꽃잎보다 더 아름다운 꽃받침을 가지고 있지요.

꽃받침 색깔도 다양합니다. 겨울날 설렘으로 다가오는 눈처럼 고운 흰빛의 하양, 복사꽃 피는 봄처럼 분홍, 연분홍, 시원스런 여름바다처럼 파랑, 책갈피에 넣고 싶은 단풍잎처럼 노랑, 다양한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지요.

꽃받침으로 보이는 잎은 총포입니다. 총포는 세 개이며 꽃받침을 감싸 안고 있지요. 솜털 같은 흰털이 빽빽이 나 있습니다.
꽃술이 눈처럼 순백인 것도 있지만 봄의 꿈처럼 분홍빛을 띠는 꽃술도 있습니다.

노루귀는 꽃잎이 없는 슬픈 꽃이지만 슬프다고 울고 있지는 않거든요. 자신이 모자라는 부분을 그 어떤 꽃보다 더욱 아름답게 승화시키며 우리들의 가슴에 열병처럼 톡 터트리며 봄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