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순백의 나라로…겨울 눈 산행

제주영주 2006. 3. 8. 21:27

 

한라의 기상 우뚝 선 삼각봉은 한 폭의 산수화  
   
 

 


▲ 하얀 눈꽃은 마치 산호처럼 아름답습니다.
 

순백의 꽃이 팝콘처럼 피워 오르며 순백의 세상으로 문을 열었지만, 쉽게 순백의 세상으로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겨울 채비를 채 서두르지 못한 농민들의 마음은 지탱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겨울은 겨울답게 매서운 바람으로 세상을 온통 흰 눈으로 덮어야 제맛이지만, 퍼붓는 폭설로 인해 농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겨울입니다. 얼음나라처럼 얼음벽으로 꽁꽁 닫아버린 듯한 겨울, 그러나 아무리 얼음으로 성벽을 쌓아 온통 세상은 얼음나라에 갇힌 듯하지만,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봄의 희망에는 소리없이 허물어집니다.

겨울 산의 봄은 차디찬 대지를 꿈틀거리며 나목의 밑동을 녹이며 일어섭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겨울 산을 깨웁니다. 겨울잠에 든 나목의 일어서며 새로운 한해를 열기 위해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온몸을 맡겨 놓습니다.

빗방울이 맺힌 目은 꿈틀거리며 새로운 한해를 열기 위해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고 있습니다.겨울 산을 오를 때는 완벽한 등반 장비를 갖추고 올라야 합니다. 스패츠와 아이젠은 물론 스틱과 비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 설국의 정원
 

하늘로 치솟은 삼각봉과 왕관릉이 담겨 진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관음사 코스를 선택하여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구린굴을 지나 숯가마터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등산객을 위해 마련 된 평상도 눈 속에 묻혀 보이지 않습니다. 탐라계곡도 자취를 감추고 온통 눈 속에 묻혀있습니다.

탐라계곡을 지나 조금 오르면 첫 번째 대피소가 보입니다. 등산객을 위해 마련 된 평상은 역시 눈 속에 묻혀 보이지 않습니다. 평평하게 다져진 눈 위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적송 숲이 나옵니다. 적송 숲을 지나면 삼각봉이 위용을 드러 낼 것입니다. 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아무리 걸어도 적송 숲에 갇혀 버릴 것만 같은 느낌, 잠시 다리도 풀 겸, 평평하게 다져진 눈 위에 앉아 있으니 적송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옵니다.

“보라, 이 차디찬 겨울 속에서도 꿋꿋하게 푸름을 자랑하며 설국에서도 붉은 나의 기운은 멈추지 않는다.” 적송 숲은 오르기에도 무던하고 솔가리를 밟는 느낌으로 평온하기까지 했던 가장 운치 있는 적송 숲길도 더디게만 옮겨지는 발걸음에 지루하게만 느껴집니다.

 

 

  

 

   
 
▲ 한 폭의 산수화로 펼쳐지는 삼각봉
 

 


적송 숲을 벗어나자 드디어 한라의 기상처럼 우뚝 선 삼각봉이 한 폭의 산수화로 펼쳐집니다.어디 숨어 있다가 불어오는지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의 미, 한라의 미를 그저 쉽게 감상할 수 없지요.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한라의 기상이 칼날처럼 솟아 있습니다. 자연이 그려내는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랐습니다.

삼각봉 왼쪽으로 왕관릉이 보이며 한라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입니다. 이제까지 올라왔던 능선보다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나에게 왜 정상을 고집하여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 왕관릉
 

 

“꼭 정상을 가기 위해서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 정해진 목표가 바로 나의 정상이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상에 오릅니다.”

꼭 백록담으로 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나의 정상이 백록담입니다. 다만, 내가 정해 놓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산한다면 언젠가는 나의 의지는 쉽게 허물어지기 때문에 나와의 싸움에서 나는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정상을 고집하여 오르는 것입니다. 어쩌면 정상에 오른다 하여도 운문에 가려 백록담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백록담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의 싸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삼각봉을 지나니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집 한 채가 깊은 산 속에 고요히 묻혀 있습니다. 아, 겨울 산 속에서 더도 말고 딱 하루만 그림 같은 집에서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스며들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납니다.

그림 같은 집 주의로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인간세상의 발자국이 순백의 나라에 도장처럼 찍혀 갈 것입니다.

     
 

 


▲ 그림 같은 집
 
겨울 산으로 깊숙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용진각 계곡에서 물은 꼭 보충하고 가야합니다. 계곡물이 흘러나오는 곳에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이나 둥그렇게 파 놓아있어 다행히도 용진각 계곡물을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시원스런 산물을 보충하고 나서 용진각 대피소로 갔습니다.

용진각 대피소에는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에 밥을 말아서 숙성된 김치에 꿀맛 같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관음사 코스로 가는 등산로에는 매점이 없기 때문에 필히 도시락은 챙기고 가야 합니다. 한라산을 우습게 알았다가는 낭패를 당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항상 앉았던 주변을 청소를 해야 합니다. 쓰레기는 꼭 챙기고 가야 합니다.

늘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귤 껍질조차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항상 쓰레기는 배낭 속에 넣고 가야합니다. 꿀맛 같은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 슬슬 정상을 위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용진각 오르막이 관문입니다. 경사가 심하여 오르기에도 무척이나 힘들지만 하산길은 미끄러지기 십상이라 자칫하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썰매를 타며 내려오던 사람의 발에 걸려 덤으로 신나게 눈썰매를 타며 미끄러졌습니다. 다행히도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아래 서있어 나를 잡아 준 덕분에 부상은 면했습니다.

하산길에서 눈썰매를 타는 것도 좋지만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썰매를 타는 것은 위험합니다. 어렵게 왕관릉 능선까지 올랐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찔하다면서 하산길은 성판악 코스로 가자고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말을 합니다.

 

     
  

 

 
▲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둥그렇게 파 놓은 약수터

 

그런데 내 배낭은 아늑한 용진각 대피소에서 쉬고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관음사코스로 하산하는 일행 중에서 아는 사람과 배낭을 바꿔 하산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정상까지 가서 배낭을 바꾸고 갈 사람을 물색해야 합니다. 관음사 코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은 바로 구상나무 숲입니다.

한겨울의 구상나무숲은 은색으로 옷을 갈아 입고 축복의 나무처럼 환영을 합니다. 정상 가까이 다가서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나무마다 눈꽃이 하얗게 피워 올랐습니다. 어떤 나무는 마치 산호 같습니다. 바닷속의 산호가 산이 그리워 예까지 올라왔나 봅니다.

하얀 눈꽃으로 꽃을 피운 나무 앞에서 추억을 담아내는 등산객들의 마음은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환호성을 치며 오로지 순백만이 존재하는 겨울 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아냅니다.

오늘도 아름다운 한 편의 추억을 담아내기 위해서 순백의 나라에 섰습니다. 세상은 깨끗한 아름다움만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그때 천사가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모임에서는 성판악 코스로 해서 관음사 코스로 하산을 할 계획에 있었습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모임 일행 중, 처음 만나는 사람과 배낭을 바꾸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는 나의 제안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용진각 대피소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배낭을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배낭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배낭을 자신이 챙겨서 관음사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합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가 나의 배낭까지 가지고 가려면 힘이 부칠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바꾸고 가자고 계속 제안을 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덤으로 내 배낭을 책임지고 가지고 가겠다면 약속을 합니다.

 

 
 


  

 

   
 
▲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제모습을 훤히 보여주는 백록담.

하지만, 홀가분하게 걸어가는 내 발걸음은 편치 못했습니다. 하산하는 동안 내내 미안한 마음으로 무겁게 걸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짊어질 짐을 남에게 맡기고 가는 길은 배낭보다 더욱 무거웠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무겁지만 내가 가지고 올 것을 후회를 했습니다. 이미 천사는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백록담이 제모습을 드러냅니다. 천사를 만난 탓일까요. 겨울에 백록담을 볼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아야 합니다. 모처럼 자신의 내부까지 훤히 보여줍니다.

아, 백록담에 섰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섰습니다. 화사한 봄처럼 생기가 도는 등산객들 틈에 끼어 희열을 만끽하며 부악을 안아봅니다. 백록담이여! 안녕! 다시 오를 때까지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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