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견월악

제주영주 2006. 3. 9. 12:36

 

 

여름의 끝자락에 핀 들꽃들의 하모니...

견월악

 

가을을 노래하는 쑥부쟁이가 꽃대를 세우며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개오리오름 초입에는 방울꽃이 반긴다. 청아한 소리로 가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산체가 넓적한 가오리 모양을 닮았다하여 개오리오름(가오리의 제주어), 또는 개가 달을 보고 짖는 형국이라 하여 '견월악'이라 한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 속에서는 오로지 숲 사이로 함초롬하게 핀 들꽃만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뿐, 그 형국은 알 수 없다. 개오리오름은 5.16도로 조랑말 목장 근처에 있다. 크고 작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를 갖춘 복합형 화산체다. 개오리, 샛개오리, 족은개오리 3형제 오름인 셈이다. 개오리오름의 비고는 118m로 둘레 3,504m의 규모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개오리오름 정상에는 송신탑과 이동통신기지국이 세워져 있다.

오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다. 자연 속에 거대한 탑과 기계가 설치된 오름, 그 누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문명이란 이처럼 아름다운 별 하나를 죽이며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운 별 하나가 쓰러져가는 오름에도 계절을 알리는 꽃은 핀다. 무리 지어 핀 들꽃의 인사를 받으며 안개 속으로 차츰차츰 걸어가다 보면, 하늘, 대지, 숲을 향해 청명한 소리로 땡~ ~ 울릴 것만 같은 물봉선을 만나게 된다.

풀섶에 대롱대롱 달린 은구슬을 여는 아침, 물봉선의 종소리와 방울꽃의 나팔소리가 어우러지는 하모니, 아름다운 들꽃으로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닦아주기를 소망해본다. 들꽃이 피어나는 오름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며 축복인가.

방울꽃의 메아리가 차츰차츰 멀어지면서 물봉선이 즐비하게 늘어서 반긴다, 물봉선과 방울꽃은 조금만 건드려도 금세 툭 하고 떨어져 버릴 만큼 가녀린 들꽃이다. “나를 건드리면 나는 금방이라도 목숨을 잃을지 몰라요.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무엇도 소유하려 하지 마세요.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나를 지켜봐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에요. 나는 습한 곳을 좋아하는 들꽃입니다. 이대로 첫눈을 기다리며 나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 겨울이 올 때까지 그 고운 빛으로 당신의 손톱 끝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처럼, 가슴속 깊이 아로새기고 싶은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물봉선과 작별을 하면서.

 

청록빛 여름이 간다

푸르르던 숲 사이로

풀벌레소리 깊어지며

슬프게 울어대는 억새풀의

서걱거리는 소리에

가을이 달려와 있네!

2004년 8월

'오름 그리고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미소  (0) 2006.03.09
법정악  (0) 2006.03.09
고근산  (0) 2006.03.09
금봉곡 석굴암  (0) 2006.03.09
이승악  (0) 200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