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족은바리메

제주영주 2006. 3. 9. 13:00

 

마지막 남은 단풍의 작별 

족은바리메 

 

한 주라도 오름을 오르지 못하는 날이면, 아쉬운 대로 꿈속에서라도 오름을 오른다. 오름의 정기를 받지 못해서 그런지 한 주 내내 기운도 없고 몸살이 난다. 무거운 마음을 가방 속에 가득 담아 오름에 오르면, 어느새 무거운 짐들은 솔솔 빠져나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어 좋은데, 오름을 오르지 못했으니 그 얼마나 마음 가득 무거웠는지 모른다.

큰바리메와 이웃해 있는 족은바리메. 드넓은 목장 길에는 시멘트포장이 되어있어 족은바리메 기슭까지는 쉽게 도착할 수 있다. 탐방로가 정비되어 있어 오르기에 완만하다. 족은바리메는 다양한 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부드러운 낙엽을 한발 한발 밟으며 헐벗은 숲속으로 들어섰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낙엽은 가냘픈 영혼의 소리를 낸다.

오색 빛 찬란하게 물감을 솔솔 풀어 화려했던 무도회는 끝이 났다. 이제 훌훌 털어 홀가분하게 빈 몸으로 앙상한 가지만 남아 겨울바람을 살살 보듬어 주기도 하고, 뉘엿뉘엿 해넘이를 앙상한 가지 끝에 붙들어놓고 짧은 하루를 한탄이라도 하는 것일까.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해넘이를 안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응시한다.

족은바리메는 동서로 길게 누워있는 화산체다. 주봉을 호위하듯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들이 연이어져 있다. 이어지는 봉우리들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인위적으로 파놓은 동굴이 눈에 띈다. 아마도 4.3사건 때 파놓은 동굴인 듯싶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가냘픈 울음소리에 우울해 버린 마음, 그나마 나그네의 마음을 반겨주는 마지막 단풍이 열 손가락 활짝 펴 반긴다. 환한 웃음으로 환영을 해준 덕분에 조금은 덜 쓸쓸하다. 미련이 남아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한 단풍일까? 아니면 우울한 마음에 한 떨기 꽃으로 남아있고 싶음일까, 남아있는 곱디고운 단풍이 해넘이에 반짝이며, 마지막 인사를 고한다.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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