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아끈다랑쉬

제주영주 2006. 3. 9. 13:02

 

 

아끈다랑쉬에 오르면 잔잔한 풀피리 소리 가득


▲ 풀피리 소리로 가득 차오르는 원형의 화구

 둥그런 보름달이 내려와 앉은 오름, 아끈다랑쉬는 앙증스럽기만 한 오름입니다. 우뚝 선 다랑쉬에 비해 초라하게 보이지만, 아끈다랑쉬에 오르면 사락사락 거리는 바람 속에 황금빛 깃털로 은은한 연주가 시작되는 오름입니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갑니다.

 고요 속에 풀피리 소리로 가득 차오르며 아담한 원형의 화구 속으로 매료되어 포근한 풀밭에 누워 원형의 하늘을 바라보면 세상은 둥글고 포근하기만 합니다.

 누구를 닮은 하늘일까. 둥그런 마음이 살포시 내려와 덮습니다. 우뚝 선 다랑쉬가 바람막이를 해준 덕분일까 포근하기만 합니다. 그 거센 바람도 아끈다랑쉬에서는 잠시 멈추고 지나가는 것일까요.

 수많은 이들은 높다란 하늘 계단이라도 오르듯이 다랑쉬에 오릅니다. 하늘 계단을 오르면 하늘에 닿을 듯싶습니다.

 겨울채비를 하지 못한 용담이 반기며 듬성듬성 풀섶 사이로 들꽃들이 어여쁘게 고개를 살며시 내밉니다. 그들이 있어 늘 아름다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축복을 누립니다.

 하늘 계단을 타고 오르는 이들을 바라보듯이 보랏빛 여운으로 바라보는 한라부추가 쓸쓸하게 바람을 가르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상부 전체가 황금 깃털로 뒤덮인 오름입니다. 아끈다랑쉬의 매력은 원형의 정상부에 황금빛 띠들의 흔들림에 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눕는 풀섶들의 흔들림 속에 은은하게 들려오는 풀피리소리가 마냥 좋습니다.

 원형의 정상부에서 커다란 오름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 커다란 오름들은 모두 겸손하기만 합니다. 높다고 뽐내거나 낮다고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둥글둥글 뭉실뭉실 한데 어우러져 오름왕국을 만들 뿐입니다.

 그 안에 우리가 안겨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왜소한 모습이지만, 내면에 숨겨진 아담함과 포근함을 지닌 오름이 바로 아끈다랑쉬입니다.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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