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바굼지오름

제주영주 2006. 3. 9. 13:04

 

 

바굼지오름의 아픔 속에 강직함을 배웁니다.

 

▲ 바위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통 거대한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오름 단산(바굼지오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는 겨울이 없는 것 같다. 온통 싱그러운 푸름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곳, 우뚝 솟아오른 산방산 곁에 야트막하게 길게 누운 바굼지오름이 보인다. 바굼지오름은 표고 158m로 원추형이다. 이 오름은 일반적인 오름과는 다르다. 바위 암벽으로 둘러있으며, 3개의 암반 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있는 바위산 형상이다.

대정향교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툭툭 튀어나온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 마치 곧은 선비의 강직함을 표현이라도 하듯이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바굼지오름을 그리면서도 오르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수천 번을 바라보며 담아냈을 뿐, 오늘에야 바굼지오름의 아픔 속에 강직함을 배운다.

예사롭지 않은 산, 바굼지오름은 거대한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여 바굼지오름이라 부른다. 또는 이 일대가 바닷물에 잠겼을 때 바구니만큼 보였다 하여 바굼지오름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바굼지는 바구니의 제주어다. 원래 바구미(박쥐)’였던 것이 바굼지와 혼동되어 한자의 뜻을 빌어 단산(簞山)'으로 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굼지오름은 선비의 강직함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기묘하게 압도한다. 오름 탐방로가 정비되어 있다.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저 평화롭다. 바다 위로 펼쳐지는 형제도를 비롯해 가파도, 마라도, 송악산, 모슬봉, 우뚝 선 산방산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평화로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바굼지오름에도 바위를 뚫고 깊숙하게 파놓은 진지동굴이 있다. 약자의 흔적이다. 그 오랜 아픔은 삭였을까.

황금빛 물결이 겨울바람에 일렁인다. 곱디고운 띠와 억새 틈 사이로 노란 산국이 포근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반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제는 푸른 평화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돌담으로 이어놓은 밭에는 온통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다. 겨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만큼이나 평화로운 봄빛만이 깃발을 올리고 있다. 사계리에는 겨울이 없는 것 같다. 겨울을 찾으라면, 그나마 바굼지오름에 훌훌 털어버린 빈 몸으로 바람에 야윈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처럼 슬퍼 보이는 억새의 흐느적거림 뿐.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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