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처럼 따라나서는 안돌과 밧돌오름
▲ 전형적인 민둥산 안돌
송당 어귀에서 구불구불한 농로로 들어선다. 둘이 하나로 보이는 민둥산이 눈에 들어온다. 거슨세미, 밧돌오름, 안돌오름, 체오름 서로 한데 모여 오름 군락을 이룬다. 그중 밧돌오름과 안돌오름은 마치 하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히 둘인데 하나처럼 보인다. 실 가는데 바늘이 따라가듯이 밧돌오름이 가는 곳에 안돌오름이 있고, 안돌오름이 가는 곳에 밧돌오름이 따라나서는 오름은 서로 닮은꼴이다. 서로 다정다감하게 기대고 있다.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을 합쳐 흔히 돌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돌오름은 비고 93m, 둘레 2,093m로 북서쪽과 남동쪽의 2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두 봉우리 사이에 동쪽으로 입구가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가 있다.
고운 풀밭인 오름은 갈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누렇게 변해있다. 들꽃이 제법 많이 피었다 졌음을 알 수 있듯이 겨울 채비를 서두르지 못한 들꽃이 드문드문 반긴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핀 물매화의 눈빛이 애처로운 초겨울이다.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느낌이다. 가을이 남기고 간 쓸쓸함에 옷깃을 자꾸 여미지만, 폐부 깊숙이 휑하니 부는 바람 탓일까. 텅 빈 허허로운 하늘만을 자꾸 쳐다보지만,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봉긋 솟아 하늘을 담아내는 용담 너머로 안돌오름을 닮은 밧돌오름이 다가와 앉는다. 이제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세상에 혼자가 아닌 나를 닮은 또 다른 내가 그림자처럼 서 있다. 마치 그림자를 보듯이 닮은꼴인 오름. 안돌오름의 그림자 밧돌오름, 밧돌오름의 그림자 안돌오름, 서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있다. 서로 떼래야 뗄 수 없는 오름, 둘이면서 하나인 오름처럼 느껴진다.
안돌오름 정상부에는 돌이 없으나 밧돌오름 정상부 중심에는 돌무더기들이 군데군데 있으며, 남동사면 기슭에는 묘들이 제법 가득 차 있다. 북쪽 기슭으로 체오름, 거친오름이 있다. 들녘을 지나는 소 떼가 평화롭다. 주봉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고요함이 펼쳐지는 평화로운 세상이다.
안돌오름과 밧돌오름 사이에 이어놓은 삼나무가 없다면 마치 하나의 오름 같다.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은 다정다감한 형제 오름이다. 하나를 오르면 자연적으로 이웃해 있는 형제를 찾아 발길을 옮기게 된다.
200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