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체오름

제주영주 2006. 3. 9. 13:05

 

 

체오름은 송당리와 덕천리 경계에 걸쳐져 있다. 체오름의 모양새가 곡식을 까부는데 이용되는 ‘키’ 혹은 ‘체’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제주어로 골체(삼태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골체오름으로도 불린다.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한겨울인데도 푸름으로 가득 찬 수목원이 있다. 개인소유의 수목원 길은 자연 그대로다. 오랜만에 흙을 밟으며, 상념에 젖어든다. 수목원에서 체오름 분화구로 진입할 수 있다. 체오름의 높이는 117m로 그다지 높지 않다. 분화구의 바닥은 높낮이가 다른 이중의 층을 형성하고 있다. 분화구 중심에는 3개의 새끼오름이 있다. 북동쪽으로 크게 열려있는 말굽형인 체오름 입구에 억새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마치 아치형인 성처럼 성벽을 이루는 모습은 여느 오름과는 사뭇 다르다. 홀씨를 털어 낸 억새 때문인지 흐릿한 날씨 탓인지, 텅 비어버린 가슴처럼 사뭇 외로워 보인다. 그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할 말을 잃어 가슴앓이를 하는지도 모른다. 마냥 슬퍼 보이는 체오름으로 깊숙이 안긴다.
체오름과 거친오름 사이에 있는 목장에선 말과 소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평화로운 겨울이다. 정상에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굼부리와 토양이 심하게 침식되어가고, 경사진 사면이 아찔하다. 양쪽 등성이가 길게 뻗어 내린 것이 골체를 닮았다. 무성한 구실잣밤나무, 보리밥나무, 진달래, 각종 나무 틈 사이로 자금우의 열매가 달랑거리며 붉게 타오르고 있다.
태양은 결코 밝은 곳을 향해서만 내리쬐는 것은 아니다. 어둠의 끄트머리에는 필히 빛나는 태양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삼태기에 가득 희망으로 넘쳐나는 태양을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골체를 닮은 체오름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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