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한라산

제주영주 2006. 3. 9. 13:08

 

가도 가도 속절없는 눈 멀미…눈꽃, 그리고 영실기암

설경이 특히 아름다운 눈꽃 명산, 한라산

 

▲ 설원의 숲은 고난 뒤에 찾아오는 평온함이요, 행복의 숲입니다.

살포시 꽃을 피워낸다. 눈을 뜰 수가 없을 만큼이나 하얀 눈꽃이 만발하다. 곱게 날갯짓을 하며 머리 위에서 가슴으로 발아래로 내려와 앉는다. 살포시 내려앉는 날갯짓에 눈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온통 설원 속에 갇힌 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눈꽃이 화들짝 피어나 요술을 부린다. 하얀 나라를 건설하는 한라산.

영실에 도착하니 혹독한 바람 속에서도 우뚝 서 있는 오백장군의 늠름한 기상이 넘쳐난다. 감기 기운에 콜록거리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겨울 산행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순백으로 덮인 설원의 세상을 보기 위함만은 아니다. 살갗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오백장군처럼 꿋꿋하게 역경을 딛고 일어설 힘을 얻기 위함이다. 신비로운 영실기암에 힘이 솟아난다. 그 어떤 삶이 찾아온다 하여도 설원의 아름다움처럼, 자신의 삶을 승화시켜냄을 배우기 위해 설원의 세상 속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며 오른다.

신비로운 영실 소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묵상에 잠긴다. 영실기암이 숲 사이로 살며시 굽어보며 오가는 산행인들에게 신령스러운 기를 내려준다. 졸졸졸 흐르는 영실 계곡물이 눈 덮인 돌 틈을 뚫고 쉬지 않고 흘러간다. 고요 속에 흐르는 맑고 경쾌한 물소리에 마음을 씻겨 내린다. 영실 소나무 숲길이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힘든 오르막이 시작된다. 헉헉거리며 오른다. 숨을 고르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지만, 세상은 온통 하얀 세상뿐.

기세등등했던 오백장군도 눈보라 속에 갇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설원의 세상뿐.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온다. 조금만 오르면 평온한 아름다운 숲길이 나온다. 오가는 산행인들과 정겹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기운을 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기운을 내면서 한발 한발 걷다 보니 1600고지.

! 아름다운 지상 낙원의 숲길이 펼쳐진다. 눈이 부실만큼이나 아름다운 이 숲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칼바람도 이 아름다운 숲길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나무마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의 은총을 받은 숲길이다. 이 아름다운 숲길은 고난 뒤에 찾아오는 평온함이다. 행복의 숲길이다. 끝나지 않았으면 한 아름다운 숲길도 끝이 나면서 광활한 평지가 펼쳐진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였는데 살갗을 에는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등산로를 알려주기 위해 설치된 말뚝과 밧줄이 눈 속에 잠길 만큼이나 많은 눈이 내린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길이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알려주기 위해 설치된 빨간 깃발만이 바람에 울부짖고 있을 뿐. 매서운 칼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울부짖는 빨간 깃발만을 따라 걷는다. 그다지 먼 길도 아닌데 한참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조금만 기운을 내고 걸으면 1700고지 윗세오름에 도착한다.

윗세오름 대피소에 가면 몸을 녹여줄 따끈한 컵라면이 반겨줄 것이다. 김치 없이 먹는 컵라면이지만 그 맛은 끝내준다. 이제 슬슬 하산 준비를 하면서 오던 길을 다시 걷는다. 발자국이 모두 사라져버린 길은 분간하기 어렵다. 오로지 빨간 깃발만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살갗을 에는 칼바람을 이기고 또다시 아름다운 숲길에 들어선다. 마냥 포근하다. 따스한 사람 마냥 포근하다. 어머님의 가슴처럼 포근한 숲길이다. 이 아름다운 숲길을 마냥 길었으면 한다. 아름다운 눈꽃이 만발하게 피어난다. 나목들의 슬픔이 아름다운 결정체로 승화시켜 얼어붙은 가슴을 녹인다. 눈꽃으로 피어나는 순백의 아름다움 속에서···.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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