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7월의 한라산

제주영주 2006. 3. 9. 14:12

 

 

신비로운 산, 한라산

 

열광하는 태양이라도 식힐 듯 폭우가 쏟아졌다. 밤새 내리던 폭우 탓인지 아침 공기가 쌀쌀하다. 한라산에 가면 온갖 들꽃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여름에는 녹음이 짙은 숲이나 철철 흐르는 계곡물을 찾아가는 게 좋다.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하늘을 드리우고 초록빛 커튼이 드리워진 숲길. 신선한 산소로 넘쳐나는 숲길을 걸어가노라면 자그마한 들꽃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꽃천사들을 서서히 만나면서 오르는 기쁨이야말로 행복한 시간이다. 입맞춤을 나누며 이름을 살며시 부르기도 하는가 하면 반가움에 환호성을 친다.

간밤에 내린 폭우 탓으로 탐라계곡에는 물이 시원스레 흐른다. 내 마음에도 영롱한 이슬이 맺혀 햇살처럼 반짝이며 힘이 저절로 솟는다. 섬잔대는 아직 봉오리를 열지 않아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파란 종소리가 울렸더라면 행복의 깃털은 한없이 날아올랐을 텐데. 하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즐기면서 올라가야 한다. 들꽃과의 행복한 만남의 시간으로 서서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웅장한 삼각봉 앞에 다다르게 된다.

금방망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인사를 건넨다. 봄 햇살처럼 부서져 내리는 여름 산길. 아름다운 들꽃으로 언제나 반겨주는 용진각 계곡. 꽃천사와의 입맞춤에 마음의 텃밭에도 향기로운 들꽃으로 가득 채워 넣는다. 용진각 계곡물에 발을 담고 여름을 노래하고 있는 노루오줌풀이 새색시 볼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한라산에는 틀림없이 요정이 살고 있나 보다. 요정은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시사철 어여쁜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들꽃을 피워 낼 수 있을까. 요정들은 아름다운 들꽃을 피워내며 한라의 꽃밭을 가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섬매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분홍빛 꽃이 앙증스럽다. 홍자색 꽃잎들이 산바람에 넘실넘실 춤을 추며 대지와의 입맞춤으로 한없이 축복을 누리고 있다.

제주달구지풀이 수줍은 듯 산바람을 타고 한들한들 거린다. 무거운 발걸음에 힘을 실어준다. 한라돌창포꽃이 총총 자그마한 꽃잎을 열어놓고 여름 햇살을 맞이한다. 꽃은 창포 꽃과 전혀 다르나 잎은 작지만, 창포 잎을 닮았다.

하얀 꽃으로 반겨주는 한라개승마가 바위틈에 피었다. 가느다란 꽃대가 계곡 바람을 타고 물놀이를 하듯 출렁거린다. 작고 앙증맞은 꽃잎이 눈부시도록 바람에 휘날린다. 난쟁이바위솔은 하얀 별들이 총총 내려와 꽃을 피우듯 앙증맞다. 잎은 채송화 잎과 비슷하지만, 꽃은 전혀 다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꽃봉오리일 때는 마치 하얀 아기별이 잠을 자는 듯하다. 다섯 개의 꽃잎을 살며시 열어놓으면, 수술과 암술이 살며시 곤충을 불러 모은다. 양지바른 바위에서 몇 년 동안 사계절의 햇살과 비바람을 마셨을까. 꽃을 피우기 위해 한여름 무더위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곤 아름다운 하얀 별들을 총총 피워낸다. 그 아름다움의 끄트머리에는 목숨을 바치게 되나 보다. 난쟁이바위솔이 왠지 가엽다. 하지만. 많은 씨앗이 종족 번식을 위해 바위에 뿌리를 내릴 게다. 다음 해에는 수많은 난쟁이바위솔이 무성하게 자랐으면 한다. 그리하여 하얀 아가별이 바위마다 내려와 한여름이면, 총총 빛나는 별로 탄생하기를 바란다. 장구 모양을 한 한라장구채꽃은 원통이며 흰색 꽃이 핀다. 한라장구채꽃의 흥겨운 가락에 백록담을 행해 오른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마다 꽃향기로 힘이 솟아난다.

용진각 계곡을 넘어서자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구상나무숲을 지나면 한라의 호수를 볼 수 있다. 게박쥐나물이 흐드러지게 피어 반긴다. 마치, 정상을 향해 오르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버거운 발걸음에 갈채를 보내주는 게박쥐나물이 어여쁘다.

구상나무숲을 지나면 한결 시원스러운 산바람과 여름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바위떡풀은 꽃도 어여쁘지만, 잎도 예쁘다. 한 줌의 흙도 없는데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다섯 개의 꽃잎 중에 위쪽 세 개의 꽃잎은 작고 밑의 두 개는 크다. 가느다란 꽃대를 세우고 다섯 개의 꽃잎이 하얀 리본처럼 바람에 휘날린다. 마치, 정상 가까이 다가서는 이들에게 수고했다고 하얀 리본을 안겨주는 것만 같다.

여름 햇살처럼 따사로운 눈길로 보내오는 돌양지꽃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부악을 한결 빛내고 있다. 햇살처럼 빛나는 여름 들꽃의 흥겨운 노랫소리와 한라의 호수가 펼쳐진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한라산에 오르면 한없이 시원한 산바람과 꽃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들의 뜨락에도 들꽃이 한없이 피어난다.

 

한라여!

 

 

흰 사슴이 살았던 백록담이여!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는 한라의 정상에서

밤마다 별들이 총총 내려와

한라의 호수에서 노닐다 가는구나

 

 

한라의 요정들이

사계절 아름다운 들꽃을 피워내면

노루들의 정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우리의 마음 뜨락에도

한라의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네!

 

한라여!

너의 이름은 영원하여라!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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