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신비로운 숲

제주영주 2006. 3. 9. 14:16

 

 

신비로운 숲,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면서....


 오름으로 바다로 활기차게 다닌 덕분에 까맣게 익어가는 씨앗처럼 검게 그을려

농익어가는 씨앗처럼 단단한 체력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감기는 걸리지 않습니다. 예전에만 해도 한여름에도 감기로 무척이나 고생했는데 오름을 꾸준히 다닌

후부터는 감기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게 되더군요. 감기란 친구 녀석은 강인한 체력을 싫어하나 봅니다.

 헉헉 숨이 막힐 정도로 며칠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꽃들도 더위를 먹고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더러는 말라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꽃의 언어가 푸른 숲으로 맴돌기도 전에 꽃봉오리로 며칠째 기다리다가 한 통의 소식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안타까움만으로 숲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숲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울창한 숲, 그곳에 가면 어떤 꽃들이 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떤 꽃을 만날 수 있을까? 늘 기대를 하면서 오름을 향합니다.

 울퉁불퉁한 숲길이지만 그런대로 편안한 길입니다. 예전에 표고재배를 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트럭 한 대가 지날 수 있을 만큼이나 길이 나 있습니다. 작은 개울을 지나기 전에 으름난초의 열매가 뜨거운 햇볕처럼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갔을 때보다 쾌청한 날씨 탓으로 인해 으름난초 열매 빛이 곱게 빛나고 있습니다.

 숲 속에 세워진 두 개의 철탑을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느 쪽 방향으로 가야 할지 잠시 헤맸습니다. 울창한 숲에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은 곧, 내가 걸어가는 길이 길입니다. 바른길이든 삐뚤어진 길이든 스스로 찾아가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람들도 그 어느 누구도 방향을 가리켜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로 인해 올바른 길을 찾아냈듯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가면 됩니다. 잘못된 길이라 하여도 용기를 내고 씩씩하게 찾아가면 됩니다. 울창한 숲 터널을 지나게 됩니다. 하늘을 삼킨 숲입니다. 빛이라곤 찾아보기도 힘들만큼이나 어두컴컴한 숲입니다.

 울창한 숲 속으로 가면 갈수록 신비로운 생명체들이 어둠에서 한 올의 빛을 걸치고 탄생합니다. 이름 모를 버섯들이 제법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하늘을 삼킨 숲을 벗어나자 세 번째 철탑을 지나 두 갈래 길이 나있습니다. 여기서 왼쪽 길을 선택하여 올랐습니다. 제대로 된 길이 나있습니다. 예전에 표고재배사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길입니다.

 무더운 날씨 탓으로 인해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잠시 쉴 겸 앉은 자리 바로 옆에는 탐스럽게 익은 으름난초열매가 먹음직스럽게 보입니다. 바쁘게 나온 탓으로 인해 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희용님이 김밥을 제법 많이 가지고 온 바람에 요기는 면했습니다. 개울을 지나서 조금 오르면 오름 기슭까지는 도착합니다. 오름 기슭으로 해서 길이 나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로질러 올랐습니다. 발끝으로 차이는 사철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어린 사철란이라서 꽃은 피우지 않았습니다.

 도란도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투명한 수정난풀이 숲 속에 숨어서 마치 우리를 지켜보는 듯합니다. 거의 정상부근에 도착했습니다.

 란곡선생님이 조용히 말씀을 하더군요. "여기 여름새우란이 꽃을 피웠다고" 엄숙하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엄숙하게 들려오는 음성에 나는 환호성을 치면서 꽃향기를 맡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여름새우란의 꽃향기는 글쎄요. 어떤 향기가 나는지 궁금하겠지요.

꽃향기는 마음에서 풍겨오는 향기가 아닐까요. 울창 숲 속에 숨어서 요란스럽지 않게 엄숙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그 어느 누가 보더라도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꽃잎의 날개를 펄럭이는 듯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숲 속의 새들이 모두 연보랏빛 바이올린을 켜며 숲 속의 연주가 잔잔히 흘려 나왔습니다.

 셔터를 누르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아주 미세하게 들려오겠지요. 오로지 인내와 기다림만이 있을 때 여름새우란의 연주곡은 들려오겠지요.

 우리는 가끔 아름다운 꽃을 만나거나 신비로운 식물을 발견했을 때 오로지 동공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역시 그날의 주인공입니다. 그런 습관 때문에 주변에 있는 식물은 보이지 않게 되며 소홀하게 됩니다.

 여름새우란꽃을 담아내기 위해서 아직은 꽃을 피우지 못한 사철란이 흙 위로 슬프게 뽑혀 있는 것 조차 몰랐습니다. 그때 란곡선생님이께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때서야 보니 안타깝게도 우리들의 발자국이 그렇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연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란곡선생님께 감동을 받았습니다.

 꽃을 보는 것도 좋지만 우리들의 발자국으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지 않게끔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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