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영실

제주영주 2006. 3. 9. 14:10

 

구름 속에 피어난 꽃이 나그네 마음 흔드네

한라산 영실기암 절벽마다 산골짜기 향기 가득

 

▲ 산골짜기 백합화, 각시원추리

 

윗세오름까지 가장 짧은 시간 내로 오를 수 있는 곳이 바로 영실코스다. 정상을 향해가지 않을 때는 영실코스를 즐겨 오른다. 아름다운 숲길, 나는 이곳을 사색의 숲길이라 칭한다. 곧게 뻗어 오른 적송 숲길을 찬찬히 오르기 시작하노라면, 마음을 씻겨 내리는 계곡물 소리에 저절로 사색의 길로 접어든다. 소리도 없이 스멀스멀 자욱한 안개 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오백나한을 휘감는다. 발밑이 온통 자욱한 안개 자락으로 뒤덮는다. 마치 구름 위를 거닐 듯하다.

눈부신 오월에 속삭였던 들꽃이 자취를 감춘 자리에는 여름 들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오로지 정상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옆으로 눈길을 돌릴 때만이 들꽃은 웃으며 다가온다.

꽃은 손짓하고 있으나 마음의 창을 열어 놓을 때만이 꽃향기를 안고 달려온다. 꽃 한 송이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면서 힘든 오르막을 오른다. 가느다란 꽃대에 작은 꽃잎들이 총총히 핀 가는범꼬리가 산바람을 헤집고 다가와 살랑살랑 흰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신비로움에 휘감겨버리는 영실기암 절벽마다 각시원추리 꽃향기로 가득 넘쳐난다. 그 누가 기암절벽마다 노란색으로 물들어 놓았을까. 신비롭게 펼쳐지는 오백나한 기암절벽마다 산골짜기마다 노란 백합이 피어 달콤한 향기로 풍겨온다.

태양처럼 활활 타오르는 정열의 꽃, 하늘말나리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품고 피어난다. 넓은 잎 치맛자락으로 하늘을 향해 가슴을 열어놓는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꼭 껴안기 위해서란다. 독특한 향기로 입맛을 돋우던 곰취도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여름으로 질주해가는 들꽃의 환호성에 구름을 타고 윗세오름을 향해 오른다.

구름 속에 피어난 구름 꽃들이 나그네의 마음을 흔들어 놓듯이 구름도 꽃이 되어 피어난다. 구름을 타고 피어났을까. 하얀 꽃송이 화들짝 피어난 구름떡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국화꽃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한 떨기 국화꽃을 보는 듯하다. 어여쁜 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국화꽃 송이다. 작고 하얀 꽃송이가 뭉게구름 속에서 피어났을까. 앙증맞은 구름떡쑥꽃에 반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 머물다 발걸음을 옮긴다.

홍자색 술을 풀어헤치고 자유로운 구름 따라 구름모자를 쓰고 피어났을까. 꽃은 술패랭이와 비슷하다.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하여 구름떡쑥, 구름패랭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외에도 구름체꽃, 구름송이풀, 구름털제비꽃이 있다. 구름패랭이 꽃향기를 맡아보니 달콤한 향기가 풍겨온다. 구름패랭이꽃이 너울춤을 추며 구름 위를 거닐게 하는 것일까.

어느새 구상나무 숲길을 걷는다. 구상나무 숲길을 지나며 평화의 길, 선작자왓이 펼쳐진다. 머리를 맑게 씻겨 내리는 백리향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반기고 있는 선작자왓, 백리향 향기에 온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다. 작은 꽃송이에서 어떤 힘이 있기에 백 리까지 향기를 날려 보내는 것일까.

노루샘에서 시원한 산물과 더불어 눈길을 붙잡는 들꽃. 뜨거운 햇살 속에 작고 앙증스러운 섬쥐손이꽃이 함초롬하게 피어 나그네의 눈길을 붙잡는다. 들꽃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환한 웃음으로 안겨 와 너울춤을 춘다. 들꽃의 몸짓을 느껴보자.

 

 

 

2005년 7월

'오름 그리고 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붉은오름  (0) 2006.03.09
7월의 한라산  (0) 2006.03.09
6월의 한라산  (0) 2006.03.09
도너리  (0) 2006.03.09
6월의 한라산  (0) 200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