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번널오름

제주영주 2006. 3. 9. 14:27

 

가을꽃향기를 따라 오르는 산행

 

가을바람에 너울춤을 추는 코스모스 꽃길을 달린다. 보드라운 바람이 꽃향기를 싣고 들녘으로 흩뿌리는 가을이다. 아름다운 꽃 편지들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며 가을 들판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코스모스 꽃길은 마치 푸른 바다로 달려가듯이 굽이친다. 바람도 제법 가을향기를 싣고 나부낀다. 꽃잎을 살며시 흔들며 하늘가로 날아오르는 가을바람을 만져본다. 마치, 솜털처럼 보드라운 깃털이 손에 잡힌다.

아름다운 꽃길이 펼쳐지는 정석항공관을 지나 번널오름을 오른다. 이 오름은 비고 62m로 원추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야트막하여 오르기엔 수월하다. 번널오름 초입에 들어서자 억새 틈에 핀 야고가 살며시 인사를 한다. 억새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는 야고는 억새에게 미안한지 고개를 내내 숙이고 있다. 수채화 물감을 살짝 뿌려놓은 듯 연한 자주색이다. 꽃자루 끝에 옆으로 향한 통꽃이 한 개씩 핀다. 야고꽃 속을 들여다보면 동그란 노란 암술대가 살며시 보인다.

야고야,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 세상은 말이지 혼자서는 살 수 없단다.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아름다운 들판을 노래하는 가 되어보자. 저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보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몸짓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는 노래가 되어보자. 고개를 들고 가을 들판을 향해 가을 노래를 불러보렴

즐비하게 피어나는 야고와의 입맞춤이 끝나자 가을바람은 노랗게 핀 남오미자 꽃향기 속으로 길을 안내한다. 다섯 개의 노란 꽃잎이 가을바람을 맞이한다. 자기 힘으로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가 없어 커다란 나무에 의지하고 올라간다. 꽃잎 안에는 사탕 같은 빨간 열매가 숨어있다. 농익어가는 가을날 탐스럽게 익어가겠지. 남오미자꽃 곁에는 포도송이 같은 머루가 알알이 여물어가고 있다. 몇 송이를 따서 먹어보니 아직은 덜 익었다. 벌레 먹은 열매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어 들일 수 있는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련다.

풀피리 소리 잔잔히 들려오는 오름 정상에는 어여쁜 솔체꽃이 가을바람에 춤을 춘다. 잎이나 꽃을 봐서는 전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구름체꽃과 같다. 단지, 솔체꽃은 구름체꽃에 비해 꽃이 조금 작다. 아담한 소녀 같으면서도 여성미가 솔솔 풍겨오는 아름다운 가을꽃이다. 솔체꽃은 가을바람과 들녘의 풀향기를 가득 담아내는 상념의 향기라고 할 수 있다. 솔체꽃 너머로 아름다운 오름군이 오라고 손짓한다. 가을 종소리 섬잔대꽃이 땡~ ~ 울리면, 쥐손이풀이 하늘을 향해 꽃 촛대를 들고 축복을 올리는 아름다운 오름군이 펼쳐진다.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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