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가을 한라산

제주영주 2006. 3. 9. 14:34

 

가을볕도 꽃이 되어 핍니다.
[꽃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오색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한라산


▲ 푸르도록 푸른 하늘과 오색으로 물든 단풍이 산나그네의 마음을 훔칩니다.

한라산의 가을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가을꽃은 아직도 피어있는지 궁금했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발 한발 내디디며, 오색물감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산으로 젖어든다. 눈부시게 피어나던 들꽃은 자취를 감춰 버렸는지, 쓸쓸한 갈바람만이 나그네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한 송이 들꽃이라도 만났으면 저절로 힘이 솟아 날듯하다. 그런 나의 바람은 저버리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서야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며시 보여주는 좀딱취꽃이 피어 반긴다. 흰 손을 흔들며 반겨줌에 힘이 절로 솟아난다. 좀딱취꽃은 봄부터 자신의 모습을 살며시 드러내 보였으나, 여름이 되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꽃을 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꽃이 피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눈에 훤히 들어오는 양지꽃처럼 꽃송이를 한 아름 안고 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하여 바람을 타며 자신의 모습을 노출 시키지도 못한다. 모든 꽃이 지고 나서야 살며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좀딱취꽃. 봄, 여름, 가을꽃이 지고 나서야 찬 서리 맞으며 살며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잎은 오각형의 심장 모양으로 꽃잎 끝이 뒤로 살며시 말려있다. 꽃잎 안으로는 분홍빛 꽃술이 수줍게 숨어있다. 수많은 들꽃이 피는 시기에 좀딱취꽃이 피었더라면, 어쩌면 그다지 어여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꽃이 진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음이 더욱더 외로워 보인다.
좀딱취꽃과 눈인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힘겨운 오르막을 오른다. 힘겨운 발걸음에 힘이 되어주는 것은 오로지 오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이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숲 사이로 오색으로 갈아입은 삼각봉이 언뜻언뜻 보인다. 힘을 내어 오른다. 조금만 더 가면 위풍당당하게 날카로운 기상을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삼각봉 앞에 서게 된다.
웅장한 왕관릉으로 시작하여 장구목 능선마다 계곡마다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한라산 품속으로 차츰차츰 안기게 되면서 용진각에 다다른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높은 언덕에 둘러싸여 있는 깊은 골짜기에는 적막한 신비로움이 젖어든다. 포근한 어머님의 품속처럼 따사로운 햇살만이 용진각 계곡으로 스며든다. 가을볕이 깊은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바위마다 따사롭게 포근히 감싼다. 바위에 누워있어도 좋을 듯하다. 하늘은 파란 물감으로 물들어 놓았는지 온통 파랗다.
요정의 우산을 꽂아 놓은 듯한 산매자나무의 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단풍빛깔보다 붉디붉은 구슬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알알이 탐스러운 붉은 열매들이 가을볕에 꽃이 되어 반짝인다. 붉게 물든 가을 산은 나그네의 마음에 불을 활활 지펴놓는다. 봄, 여름, 가을꽃이 모두 춥다고 저마다 숨어버린 한라산에는 가을볕도 꽃이 되어, 나무마다 풀잎마다 내려와 알록달록 꽃을 피운다.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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