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원에 피는 꽃, ‘세바람꽃’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오월, 신록으로 물들어가는 이파리들의 손짓에서도, 성큼 무성해진 초록 풀무지의 흔들림에서도, 밤새 내리는 빗줄기에서도 풀 비린내 내며 싱그러운 여름이 다가섭니다. 그렇게 희망으로 찼던 봄은 가고 여름이 오나 봅니다. 하지만, 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잔잔한 미풍으로 어루만지며 봄꽃을 피워내는 천상의 화원이 있으니 봄을 만끽하고 싶으시다면 제주의 영산, 한라산의 봄을 느껴보세요.
해안 일대에서 불어오던 봄꽃들이 한라산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백록담까지 꽃 행렬이 이어집니다. 완연한 꽃물결을 이루며 봄을 장식하는 한라산, 이렇듯 한라산의 봄은 세바람꽃, 흰그늘용담, 제주양지꽃, 구름미나리아재비, 설앵초, 큰앵초, 산개버찌나무, 귀룽나무, 철쭉 등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 중에서도 세바람꽃은 일본, 대만 등지에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한라산과 북한 북부지방에서만 자생하는 풀꽃으로 식물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미나리아재비과 세바람꽃은 바람꽃의 일종으로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과는 달리 줄기를 감싼 이삭잎 사이로 3개의 꽃대가 올라와 3송이의 꽃을 피우기 때문에 세바람꽃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세바람꽃은 4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6월 초까지 꽃을 피워내며 한라산을 찾는 이들에게 청초함을 안겨주는 풀꽃입니다.
고산지대 낙엽수림 일대에 자생하는 세바람꽃은 자그마한 하얀 꽃잎을 초록 풀 틈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존재를 조심스레 드러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초연하게 피어나는 풀꽃의 수줍음에 한 번쯤은 마음을 빼앗겨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작고 여린 풀꽃이 마음을 훔치며 달아나는 봄, 화려한 자태도 아니며 향긋한 향기도 아닌 그저 심산유곡에서 풍겨오는 풀 내음,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아닐까요? 아침이슬에 세수를 막 하고 나온 맑고 고운 꽃잎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세바람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꽃 역시 신비로운 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잎은 꽃받침이며, 이는 꽃의 구실을 돕는 역할로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만약 세바람꽃의 꽃받침이 여느 꽃받침처럼 초록색이라면 곤충들의 눈길을 끌지 못할 것입니다. 세바람꽃은 향기도 없거니와 화려하지도 않고 식물 전체가 작어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또한, 꽃봉오리를 감싸고 보호하는 작은 잎, 즉 이삭잎은 가느다란 작은 꽃자루를 보호하기 위해 식물 중간쯤에 자리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그마한 식물들도 생존전략을 펼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을 보면 신비롭습니다.
변산바람꽃이 봄을 알리는 꽃이라면 세바람꽃은 봄을 마무리하는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는 봄이 아쉬운 듯 꽃망울을 터트리며 희망찬 봄을 장식하는 세바람꽃의 수줍은 미소가 봄을 끌어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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