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이야기

봄 햇살을 먹고 사는 꽃, 꿩의바람꽃

제주영주 2009. 3. 7. 18:40

 

제주 바람 따라 햇살 따라 피어나다

 

숲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면 여전히 겨울잠을 자는 듯 앙상한 가지 사이로 봄바람만이 일렁입니다. 하지만 숲 속에 들어서면 어느새 자잘한 꽃들을 피워냈는지 소리 없는 요란함이 들려온다고 할까나, 만발한 꽃밭을 이룹니다.

 

봄바람 따라 피었을까나? 햇살 따라 피었을까나? 산새 노랫소리에 피었을까나? 완연한 봄빛에 활기를 되찾는 숲, 생명의 움트는 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옵니다. 세복수초, 변산바람꽃에 이어 봄 햇살 가득 가슴에 담은 꿩의바람꽃이 하늘하늘 거리며 하얀 꽃잎을 활짝 펼칩니다.

 
꿩의바람꽃은 변산바람꽃과는 달리 날씨에 민감한 꽃입니다. 햇살을 먹고 사는 꽃이라 할까나. 날씨가 흐린 날이면 꽃잎을 다물고 맥없이 고개를 푹 숙여버립니다.

 
하얀 꽃잎을 우아하게 펼쳐 해바리기를 하는 그 모습은 마치 해님을 사모하는 요정처럼 아름답습니다. 이 꽃은 흰 바탕에 연한 자줏빛을 띠며 변산바람꽃의 바통을 이어 봄바람을 일렁이는 봄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봉오리는 잎을 돌돌 말린 채 숙여 있습니다. 마치 그 모양이 꿩의 발을 닮은 데서 연유하여 '꿩의바람꽃'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꿩의바람꽃이 필 무렵이면 제법 꿩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꿩들의 짝짓기가 되는 시기이지요.

 

바람꽃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제주에선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남방바람꽃,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세바람꽃 등이 있습니다.  바람꽃의 속명은 아네모네(Anemone) 즉,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지요.

 

가느다란 꽃대에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이 송이송이  바람결에 살랑이며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이렇듯 자연과 어우러진  환상의 꽃밭은 햇살 가득 환한 웃음으로 잔잔하게 퍼져 꽃내음, 풀 냄새로 영혼을 헹궈냅니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요란스럽지도 않으며 그저 고요 속에서 살그머니 깨어나는 생명체입니다.  그 생명체의 신비로움에 넋을 놓고 있노라면 어느새 하나의 풀꽃이 되어 바람 따라 햇살 따라 노래하는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빠져듭니다.

 

바람 따라 그저 흔들리는 자그마한 몸놀림의 환희 속으로 뛰어든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