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꿈꾸는 ‘다랑쉬오름’
봄은 이미 남녘땅에 꽃망울을 터트리며 환희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하늘 가득 번져가는 벚꽃의 화려함 속에서 슬픔처럼 밀려오는 낙화 소리에 발길을 이끌게 하는 다랑쉬오름, 이 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동쪽으로 돝오름과 용눈이오름 사이에 우뚝 솟아있다. 마치 높은오름과 견주듯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위용을 드러낸다. 다랑쉬오름은 원형의 분화구를 갖추고 있으며, 제주의 오름 중에서 대표적인 오름으로 손꼽힌다.
다랑쉬오름은 비고 227m, 둘레 3,391m로 비교적 경사가 높아 오르기에는 힘이 든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등산로에는 고무매트가 갈지자로 놓여 있어 수월해졌다. 등산로에는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듯 철쭉나무가 반기고 있으며, 고무매트 사이로 ‘산자고’와 ‘솜나물’이 봄을 이고 힘겹게 피어났으나 애처롭다. 누군가의 발에 짓밟힐까 봐, 땅에 바짝 붙여 몸을 숙인 모습은 마치 4.3사건으로 인해 다랑쉬굴로 피신했던 지역주민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숨 막히는 시간과의 사투 속에서 그 얼마나 두려웠을까? 결국, 그들은 빛을 보지 못한 채 고통을 받으며 목숨을 잃어야 했다. 다랑쉬오름에서는 풀 한 포기라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그들의 영혼으로 피었는지 모르는 일이니까.
봄을 이고 피어나는 자그마한 풀꽃의 노래를 듣노라면, 버거운 길도 가벼워지고 어느새 오름 정상에 서게 된다. 이 오름 동쪽 아래에는 아끈다랑쉬오름이 마주하고 있다. 아끈다랑쉬는 마치 어린 왕자가 사는 별처럼 아담하다. 아끈다랑쉬오름은 달처럼 둥그런 형태이며 야트막하다. 아끈다랑쉬오름 오른쪽으로 시선을 주면 곡선이 아름다운 용눈이오름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곡선 너머로 풍차가 경관을 헤치고 있다.
다랑쉬오름 주위로 크고 작은 오름이 펼쳐지는 풍광은 그저 평화롭다. 비스듬히 산비탈로 이루는 타원형의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 거닐다 보면, 이 오름 이름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분화구의 깊이는 백록담과 비슷한 113m로 깊숙하게 패여 있다.
오름 정상에는 봄인데도 “아직은 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속삭이듯 겨울의 잔해를 벗어버리지 못한 누런 풀잎이 낮은 자세로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우주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울부짖기도 하고, 깊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거세게 일렁인다. 풀잎은 바람결 따라 물결을 만들어내며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제주의 4월은 파릇파릇한 보리밭과 샛노란 유채꽃이 넘실거리며, 완연한 봄빛으로 물드는데, 다랑쉬오름에는 봄이 더디게만 오는가 보다.
다랑쉬오름은 제주인의 삶과 4.3의 역사를 안고 있다. 4월이 되면 4.3 순례자들 방문이 이어지기도 한다. 순례자들은 4.3 영령들의 명복을 기리며 다랑쉬굴과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와 다랑쉬오름 순환로를 탐방하기도 한다. 오름 순환로는 약 4.9km의 비포장 길로 돼 있다. 오롯이 나 있는 길을 따라 새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길을 걷노라면 4.3의 비애에 젖어 든다. 제주 사람이면 누구나 잊지 못할 4.3 사건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4.3에 대해 금기시했던 시절, 아버지는 가슴에 멍울진 4.3의 비애를 자식들에게 털어놓으시며 자주 울곤 하셨다. 4.3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늘 팽나무에서부터 시작하곤 하셨다. 제주에는 각 마을 중심에 수호신처럼 팽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팽나무에서 주민들의 담소를 나누거나,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곤 했다. 각 마을의 팽나무는 주민들의 삶의 사연이 담겨있다. 다랑쉬오름 남동쪽으로 소실된 다랑쉬마을에도 여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러나 이곳 팽나무는 주인을 잃은 채 잃어버린 마을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다랑쉬마을 주민들의 삶과 4.3의 아픈 상처를 품고 있는 팽나무 옆에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표석만이 탐방객을 맞이할 뿐. 이 표석에는 다랑쉬마을 주민들은 산디 메밀, 조 등을 일구거나 우마를 키우며 살았고, 폐촌 될 무렵 이곳에는 10여 가호 40여 명의 주민이 살았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낳고 오름에서 죽는다고 할 만큼 오름과 밀접하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듯이 오름 자락에 마을을 형성하고 오름에서 우마를 키우기거나 밭을 일구며 살아왔다. 다랑쉬마을 주민들도 거친 제주의 바람을 막아주는 다랑쉬오름을 의지하며 농사를 짓거나 소와 말을 키우며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다.
4.3 당시 이 마을은 토벌대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지금은 집터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와 돌담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다랑쉬마을의 비애를 품은 이 팽나무에서 동남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다랑쉬굴로 향하는 이정표가 설치돼 있으나, 다랑쉬굴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랑쉬굴로 향하는 길은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들과 억새풀로 을씨년스럽다.
다랑쉬굴 입구에는 초라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동굴이라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치 약 40cm 정도의 자그마한 용암동굴이다. 4.3사건이 일어나면서 토벌대의 눈을 피해 다랑쉬굴로 피신했던 11명은 여자 3명과 9살 어린이와 성인 남자 7명이다. 이들은 결국 토벌대가 굴 입구에 지핀 불의 연기에 질식하여 참혹하게 숨졌다. 다랑쉬굴은 피난민 학살 터로 4.3 교육 현장으로 활용돼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씁쓸하게도 다랑쉬굴로 가는 길마저 황폐하기 그지없다. 다랑쉬굴에도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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