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영혼의 안식처, 정물오름

제주영주 2010. 5. 5. 01:18

 

영혼의 안식처, 정물오름

 

올봄은 유독 혹독했다. 봄인가 싶어 피어난 꽃들은 갑작스레 내린 눈으로 말미암아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이렇듯 겨울과 봄이 엎치락뒤치락 몇 번을 하더니 겨울은 이내 꼬리를 감추었다. 봄은 제 역할을 하느라 분주하게 초록빛을 키워내고 있다.

시선을 주는 곳마다 초록 물감이 번져가듯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오름과 들녘에는 연둣빛으로 옷을 갈아입어 눈이 시원스럽다. 그 싱그러운 물결과 생동감이 강하게 불어오는 정물오름. 주변은 온통 초록 바다다. 이시돌목장을 끼고 있는 이 오름은 왠지 사철 푸르러 보인다. 오름 주위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정물오름 초입에는 표지석과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해발 466m에 있는 이 오름은 비고 151m, 둘레 2,743m로 북서쪽으로 넓게 터진 말굽형 화구를 갖추고 있다. 오름명의 유래를 가늠할 수 있는 샘이 오름 들머리 양쪽에 있다. 식수로 사용됐던 정물샘(안경샘)과 우마용 샘이 있다. 수량이 풍부하기로 이름난 정물샘은 한경면 중산간 마을에서도 이 물을 기러다 먹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인 없는 샘으로 방치돼 아쉽다. 어디서든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오늘날엔 샘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지 모르나, 조그만 신경을 쓴다면, 나그네의 목을 축을 수 있는 샘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정물오름은 동서 능선을 따라 침목 계단과 타이어매트로 조성돼 오르기에 수월하다. 오름 정상에는 탐방객을 위해 마련된 벤치가 놓여있다.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저 여유롭다. 이 오름 동쪽에 자리한 이시돌 목장에서 뛰노는 말들의 모습은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그 생동감은 바람을 타고 초원의 노래로 변해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목장에서 불어오는 녹색 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풋풋한 신선함으로 넘쳐난다.

이 오름 남동쪽으로 당오름이 이웃해있다. 두 오름 사이에는 삼나무로 경계를 이르듯 제주시와 서귀포시 경계를 구분 짓고 있다. 서쪽으론 도너리오름 너머로 산방산, 그리고 북서쪽으로는 수월봉과 차귀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오름 서쪽 기슭으로 원추형 알오름이 솟아 있다. 이 알오름은 독립된 화산체로 정물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은 해송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마치 어미의 품에 안겨 있는 듯 아담하다. 이처럼 정물오름은 양팔을 벌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만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정물오름은 '개가 가리켜 준 명당터'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분화구 안에는 옹기종기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삶의 피로에 지친 자는 오름 기슭을 따라 펼쳐지는 초록의 물결을 바라봄으로 활력소를 얻을 수 있다. 초록은 눈을 시원스레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색이다. 이렇듯 정물오름은 산자나 망자에게 영혼의 안식처를 제공해준다. 또한, 봄에서 늦가을까지 다양한 들꽃이 피어나 심미적 역할을 한다. 오름은 자연의 향내를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다.

오름에서는 급히 걸을 필요가 없다. 천천히 걸으며 자잘한 풀꽃과 마주하거나 산새들이 지저귀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걸어야 제맛이 난다. 등산로 초입에는 자주괴불주머니가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봄 햇살을 한껏 받아 빛을 발한다. 그 흔들림이 유독 아름답다. 자주괴불주머니는 현호색과 식물이다. 이 식물은 주로 그늘진 습지에 자생한다. 너무 흔해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식물이지만, 꽃의 모양새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신비롭다. 자주색 꽃 모양새는 작은 새를 닮았다. 또는 물고기를 연상케 한다. 어떤 이는 멸치를 닮았다고 한다. 이처럼 꽃은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인다. 괴불주머니 종류로는 노란색으로 꽃을 피우는 염주괴불주머니와 산괴불주머니 등이 있다. 이 꽃은 비가 와도 여전히 꽃을 피워 봄노래를 흥얼거린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이다.

이 오름에는 자주괴불주머니 외에도 보랏빛으로 피는 금창초도 만날 수 있다.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이 꽃은 개화 시기가 긴 편이다. 이른 봄부터 피기 시작하여 초여름까지 핀다. 금창초는 가장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자줏빛으로 꽃을 피우는 제비꽃이 등산로에 피어 나그네를 반긴다. 들꽃 중에서 다양한 식구를 거닐고 있는 꽃을 꼽으라면, 제비꽃이다. 제비꽃은 16여의 종류로 꽤 많은 편이며, 구별하기가 어려운 식물 중 하나이다.

자잘한 풀꽃 외에도 이 오름 정상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 정상을 오르는 이들에게 봄의 진미를 선사한다. 봄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발그레한 진달래꽃이 나비를 불러 모은다. 또한, 가시덩굴에 줄을 지어 총총히 피어난 줄딸기의 모습도 자연의 미를 더해준다. 줄딸기 열매는 초여름에 태양을 닮아가듯 정열적으로 탐스럽게 익는다.

오름 정상에서 시원스레 펼쳐지는 풍광이야말로 그 어떤 그림과도 비유할 수 없을 만치 아름답다. 이 오름과 이웃해 있는 당오름, 도너리, 새미소, 금악오름 등이 친구처럼 둘러앉아 있다.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정물오름은 푸른 물감으로 번져가듯 싱그럽다. 이처럼 오름은 인간과 자연을 품을 뿐만 아니라, 우리네의 심성을 정화시켜주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정물오름 찾아가는 길 평화로->새별오름->캐슬렉스 골프장 입구 도로로 진입->이시돌목장 방향으로 우회전->2km 정도 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