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파란 하늘과 '자줏빛 융단'의 조화

제주영주 2010. 10. 29. 18:48
파란 하늘과 '자줏빛 융단'의 조화
[오름과 야생화 19] 꽃향유의 향연 가을 타는 비치미오름

 

 

휘파람 불며 이 오름 저 오름 누비는 가을바람처럼 양팔을 벌려 하늘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날아오르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비치미~ 비치미~ 이름만 불러보아도 아름다운 오름, 비치미오름을 오른다. 비치미오름을 한 번이라도 올라본 사람이라면 다시금 찾게 된다. 가을꽃들이 정갈하게 피는 오름으로 꼽을 수 있다. 비고 109m로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민틋한 풀밭 오름이라 아이들과 함께 올라도 좋겠다.

번영로(97번 도로)를 타고 대천동 사거리에서 표선면 성읍리 방향으로 2.3km 지점의 도로변 좌측에서 남쪽으로 가로 누운오름이 보인다. 성불오름이 끝나는 지점 맞은편 부성목장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작은 개울이 나온다. 개울을 지나 목장 길을 따라가다가 좌측으로 나 있는 철문을 지나면 쉽게 오를 수 있다.

가을볕이 내리쬐는 목장 길을 걷노라면 고슴도치를 닮은 고슴도치풀과 눈맞춤도 하게 되고, 진득진득한 진득찰의 자그마한 꽃을 담느라 정신없이 풀밭에 주저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이처럼 가을꽃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어릴 적 누볐던 언덕배기처럼 아련한 추억이 스며들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야트막하다.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비치미오름을 오르고 나면 비치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오름 기슭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지만, 나그네를 위해 배려해 놓은 작은 계단이 놓여있다. 철조망을 넘어서면 삼나무 숲 사이로 태역밭(잔디밭)이 펼쳐진다.

가을 햇살에 속살을 비춘 비치미오름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을꽃과의 눈맞춤에 하늘로 날아 오를듯한 설렘이 일렁인다. 청아한 잔대의 종소리를 들으며 오르다 보면, 보랏빛 자주쓴풀이 오롯이 피어 발길을 붙잡는다.

가을 꽃향기를 맡으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다시 삼나무 숲을 지나 하늘로 잇는 능선이 보인다. 하늘로 이어질 듯한 능선을 오르다 보면 자줏빛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한라꽃향유가 만발하다. 그 모습은 마치 불꽃이 튕겨 비치미오름을 붉게 물들어놓을 듯한 기세로 꽃불이 활활 타오른다.

이 오름의 유래를 보면 꿩의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비치악(飛雉岳)라 하여 비치미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비치미 맞은편으로 우뚝 솟은 개오름이 보인다. 개가 쫓으니 꿩이 높은오름으로 날아오를 기세를 펼친다.

비치미오름 끝자락에는 길게 이어진 돌이미오름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비치미오름과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오름처럼 느껴진다. 도란도란 어깨를 기대선 오름군이 다가와 둘러앉으면, 마치 나를 보호하는 호위병 같다. 제주의 오름은 그 어느 오름에 올라서도 내가 있는 곳이 중앙이며, 제주의 아름다운 오름군은 나를 보호하는 병사가 되어 지켜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동향으로 터진 발굽형 분화구 안으로 들어서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니 따사롭다. 그 포근함에 때 아닌 철쭉도 피었다. 가을하늘을 품고 피어나는 자그마한 풀꽃의 속삭임을 들으며 오름의 속살을 거닐다 보면, 활활 타오르는 자줏빛 꽃물결에 환호성을 지르며, 하늘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이 오름 저 오름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붉게 물들이며 타오르는 꽃불 속으로.

 

.<제주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