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그리고 나

구름도 쉬어가는 오름

제주영주 2010. 9. 24. 18:39

 억새꽃에 실린 가을서정

 

 

 

 

 

 

 

 

 

구름도 쉬어가는 높은오름

 

가을바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함이 깃든 음색이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며 깊다. 헐벗은 마음을 다독여주는 손길 같은 가을바람이 제주의 오름을 어루만지며 가을꽃을 보듬고 있다.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억새꽃처럼 가을향기에 취해보면 어떨까?

구름도 잠시 머무는 곳, 그곳에 가면 복잡하게 얽힌 마음과 머리까지 싹 풀릴 수 있다. 상쾌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마시며,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높은오름을 오른다. 한라산신들이 내려와 사냥하면서 살기 시작한 마을의 발원지인 송당 일대는, 유독 화산분출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지역임일 알 수 있다. 이 일대에는 안돌, 밧돌, 체오름, 성불오름, 비치미, 민오름, 아부오름, 당오름, 높은오름 등이 밀집해 있다. 마치 송당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이중 위용을 드러내는 높은오름은 구좌읍 일대에서 다랑쉬오름과 어깨를 겨루고 있는 격으로 위품이 있는 오름이다.

송당리에서 성산읍 수산리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구좌읍 공설묘지 표지석 쪽으로 가면 높은오름 기슭에 다다른다. 높은오름 동사면 기슭에는 구좌읍공설묘지와 관리사가 있다. 이곳 관리사 왼쪽으로 나 있는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높은오름은 표고 405m 비고 175m의 규모로 원형 분화구를 갖추고 있다. 구좌읍 일대 오름 중 가장 높다 하여 '높은오름'이라 불리며 한자로는 고악(高岳)이라고 한다. 높은오름은 산책로가 놓여있지 않아 오히려 자연의 매력을 한층 느낄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억새와 풀꽃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에는 제격이다.

발길을 붙잡는 수까치깨, 싸리꽃, 산박하, 노랑개자리, 참취, 당잔대, 쑥부쟁이, 야고 등이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발길 내디딜 때마다 가을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이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권이 압도적일 만큼 탐방객들이 높은오름을 즐겨 찾는다.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면 한라산 자락으로 둥글게 연이어지는 오름 곡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거대한 성 모양을 한 성산일출봉, 수산봉, 용눈이오름, 손지봉, 거미오름, 백약이, 영주산 등 오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오름의 천국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가을날 억새 물결의 출렁임을 느끼기엔 그만이다. 바람 따라 흔들어대는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필 즈음이면, 가을은 한층 농익어 높은오름의 매력을 더한다. 10월 중순이 되면 이 오름 정상 일대와 굼부리에는 억새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억새꽃의 은은함을 보노라면, 자연에 순응하는 풀꽃의 순수함을 다시금 깨우칠 수 있다.

가을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흔들어대는 억새 물결, 그 춤사위로 펼쳐지는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억새꽃은 삶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토닥여 주는 손길처럼 감미롭다. 특히 해넘이에 일렁이는 억새 물결은 심금을 울리는 연주곡과도 같다. 올가을엔 억새 물결 따라 가을 길을 나서보면 어떨까?

 

<제주투데이>